벌어본 사람이 잃는다
[스페셜리스트│증권·금융] 고란 중앙일보 기자·경제부
고란 중앙일보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3.21 15: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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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 중앙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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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말, 학교 선배가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연락해서는 대뜸 OOO이라는 주식에 대해 물었다. 이 주식을 지금 팔아야 하느냐고. 지금 원금의 3분의 1이 날아갔다고 했다. 반등을 노리고 더 들고 있을지, 아니면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팔아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에 전화했단다.
처음 들어보는 주식이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차트부터 살폈다. 600원 선 안팎이던 주가가 9월부터 급등했다. 한 달 만에 2600원을 돌파했다. 그러다 10월 들어서 급락세로 돌아섰다. 전화를 받았을 때는 주가가 10% 이상 떨어지고 있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인수합병(M&A) 이슈로 주가가 이상급등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한국거래소는 급등 이유를 묻는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이에 대해 회사는 ‘이유 없음’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가가 급락해 사달이 난 것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나 업계 관계자들에게 이 종목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 같았다. “처음 듣는데요. 그런 주식엔 아예 손 대지 않는 게 좋은데…. 하루라도 빨리 파세요.”
그렇다고 선배에게 ‘팔아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랬다가 괜히 다음날 주가가 오르면 원망을 듣기 십상이다. 최대한 완곡 어법으로 매도를 권했다. 결국 전화받은 날 주가는 하한가(15%)로 밀렸다. 다행(?)인지 이후 3일 연속 가격 제한폭까지 떨어지며 주가는 1000원대로 주저앉았다. 이후 반등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하락세를 이어 최근 주가는 600원 선에 머물고 있다.
왜 그런 종목에 투자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는 고위 공무원이 “좋은 정보가 있다”고 추천해줘서란다. 지난여름 그 정보를 듣고 주식을 샀고, 정말 매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가가 급등해 50% 수익을 내고 팔았단다. 그런데 팔고 나서도 주가가 계속 오르니 욕심이 생기더란다. 이번엔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투자금을 두 배로 늘렸다. 결국 고점에 물려 앞서 벌었던 돈은 물론이고 원금까지 반토막이 났단다.
여의도 언저리에서 취재를 한 지 6년이다. 그간 주식으로 크게 돈 잃은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돈 잃기 전에 돈 벌어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명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볼링을 처음 친 사람이 스트라이크를 치고, 골프를 처음 친 사람이 홀인원을 한다. 화투장을 처음 만져본다는 이가 ‘쓰리고에 피박’을 안기며 판을 쓴다. 뭐든지 처음 할 때는 운이 따라 준다는 말인데 투자에서 이런 초심자의 행운을 맛봤다가는 큰돈을 잃기 십상이다. 자기가 정말 투자에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모하게 베팅을 한다.
그리고 초심자의 행운과 세트로 다니는 게 ‘본전심리’다. 본전만 찾으면 판을 떠나겠다는, 곧 원금만 회복하면 투자를 그만 하겠다는 마음에 조급해진다. 대박을 노리다가 더 큰돈을 까먹고, 마음은 더 급해진다. 결국 판돈(투자금)이 떨어지면 “주식 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저주하며 시장을 떠난다.
올 들어 주식시장이 10% 넘게 올랐다.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주변에서는 돈 벌었다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건 개인들이 초심자의 행운을 진짜 자기 실력으로 믿고 시장을 상대로 무모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세계적인 투자자들은 겸손하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다는 말로 성공 비결을 꼽곤 한다.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의 성공 투자 비결도 소박하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절대 잊지 마라. 첫째, 절대 손실을 보지 마라. 둘째, 첫 번째 원칙을 절대 잊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