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혼란의 저널리즘에 주는 교훈
[언론다시보기]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4.11 14: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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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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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스마트폰과 PC를 통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온라인 동영상은 폭발적인 여론 형성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2년 4·11 총선은 소셜 미디어에 기반한 여론 형성 메커니즘이 선거판을 좌지우지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올해 말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추세가 더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탈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저널리즘의 근본을 되돌아보게 한다. 매일 온-오프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사실’과 ‘주장’을 보면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좌우 진영은 쫙 갈라져 모든 사회적 의제에 대해 정반대의 정보와 시각을 쏟아내면서 자신들이 진실이며 정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사람은 없고, 그런 능력과 권위를 가진 존재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저널리즘은 무엇이며, 직업 저널리스트의 사회적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성찰의 과정에서 두 권의 책을 만났다.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과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다.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개를 키우는 두 가족이 공원에서 조우한 사건을 소재로 4명의 기억을 차례로 풀이한다. 부유한 차림의 여인은 공원에서 자신의 개를 낯선 개가 쫓아다니고, 아들을 찾느라 애를 태운 것만 기억한다. 실직 상태의 남자는 딸과 함께 개를 데리고 공원 산책을 하면서 딸로부터 활력을 얻는다. 부잣집 남자 아이는 낯선 여자 아이와 만나 미끄럼틀과 구름다리를 함께 타면서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나 모처럼 사람의 향내를 느끼고, 여자아이는 공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로부터 받은 꽃을 아버지에게 선물한다.
브라운의 동화는 동일한 소재와 경험이라도 이념, 직업, 경험, 재산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술하는 점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또 자신의 기억과 기술이 실체적 진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종이 위에 철가루를 뿌려 놓고 종이 밑에 자석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철가루의 모양이 자석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연상하면 브라운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창업자인 잡스가 태어나서부터 애플창업, PC발명, 아이폰 발명,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생을 다룬 전기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책은 잡스를 매개로 세계 IT 산업역사를 충실하게 담은 ‘미국 실리콘 밸리 실록(實錄)’이기도 하다.
아이작슨은 전기 출간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잡스는 내가 언론인이기 때문에 전기 작가로 선택했다”면서 “잡스는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각까지 담아 객관적인 전기를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실제 아이작슨은 잡스와 40여 차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또 관련 인물 100여 명을 일일이 만나 서로 다른 기억과 기술을 퍼즐 맞추듯이 조합했다. 그런 집필 태도 덕분에 9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에서 잡스는 결코 무결점 영웅이 아니다. 잡스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의심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성취에 흥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아이작슨은 잡스의 핵심 가치관과 천재성을 입체적으로 엮어냄으로써 잡스의 진면목을 역사에 영원히 남기는 임무를 완수했다.
잡스 전기의 백미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관련된 부분이다. 잡스는 20대부터 세계 IT산업계 패권을 놓고 경쟁했던 빌 게이츠에 대해 “창의력없이 베끼기만 한다”고 저평가했다. 게이츠 역시 언론과 대중 앞에서 잡스의 성과를 노골적으로 무시했으며 심지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생산하는 잡스의 수직계열화 전략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작슨은 두 거인의 서로 다른 기억과 주장을 저널리즘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두 사람이 서로 비난하고 질투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했으며 때로는 닮고자 했던 사실을 밝혀냈다.
디지털 미디어 쇼크로 인해 정체성 혼란에 빠진 저널리즘은 브라운과 아이작슨의 책에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 브라운의 동화를 통해 다양하고 모순적인 인식이 공존하고 또 부딪치는 디지털 공간이 사실은 별다른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거울이라는 본질을 꿰뚫고 이를 담담하게 볼 수 있는 저널리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아이작슨의 책을 통해 불명확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통해 보완하고,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에 대한 인터뷰 등 끈기있는 추가 취재를 통해 전체상을 기록하는 저널리즘의 진정한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