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지금부터 시작이다

[스페셜리스트│경제] 곽정수 한겨레21 기자·경제학 박사


   
 
  ▲ 곽정수 한겨레21 기자  
 
한판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드디어 결판의 날을 맞았다. 초반전은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을 앞세운 야당의 일방적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야당의 나눠먹기식 공천 실패를 틈타 여당이 역전에 성공하는 듯했다. 후반전은 전통적 지지층 결집에 나선 여당과 다시 전열을 재정비한 야당이 팽팽히 맞서는 혼전이 벌어졌다. 11일 밤에는 현재의‘여대야소’가 계속 유지될지, 아니면 ‘여소야대’로 뒤바뀔지 결정된다.

하지만 각당의 성적과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선거는 민의의 수렴 과정이다. 이번 총선 민의가 무엇인지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바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다. 여당은 당명을 바꾸고,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추진을 명문화하고,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전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에 영입하는 ‘성형수술’을 감행했다. 야당은 이명박 정부가 ‘747’(7% 성장·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위 경제대국)의 장밋빛 공약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친재벌정책으로 양극화만 심화시켰다고 심판론을 내걸었다. 마치 지난 25년간 미완의 과제였던 경제민주화가 곧 이뤄질 것 같은 기대감을 낳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국민들은 엄청난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민주당은 개혁정책의 설계자인 유종일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에게 공천을 주지 않아 ‘초대형 사기극’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박영선 전 최고위원은 “공천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새누리당도 전혀 나을 게 없다.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인물 대신 시장에 모든것을 맡겨버리자는 맹목적 시장자유주의자나 친재벌주의자를 공천했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국민 모두 잊어서는 안될 일이 있다. 개혁은 이제 이념의 문제나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 서민이나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의 문제가 됐다. 스스로를 수구꼴통이라고 부르는 인사들조차 “다른 것은 몰라도 이제 재벌개혁은 더 이상 늦춰선 안될 것 같다”고 말하는 세상이 됐다. 국민의 생계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정권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그 누가 권력을 잡든 오래갈 수 없다.

이제 19대 국회의원들은 당적에 상관없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당장 다가오는 정기국회에서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을 위한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 이미 가사상태에 빠진 이명박 정부나 차기정부에 책임을 미룰 이유가 없다. 민주당과 진보당은 이미 총선 후보단일화 때 공동정책에 합의하고 19대 국회 입법화를 약속했다. 또 여야 모두 개혁의 큰 방향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만큼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 공통된 약속부터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이 총선용 ‘포퓰리즘’이나 ‘대기업 때리기’라는 폄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19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는 여야의 개혁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을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나아가 각 당의 대선후보들은 개혁을 구체적으로 담보할 수있는 방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민주당과 진보당은 개혁을 대선후보 단일화의 플랫폼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단일화의 명분을 살릴 수 있다. 누가 집권을 하든 차기정부의 주요 경제부처 책임자에 친재벌 모피아 출신들을 배제하고 금융위원장·공정거래위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 등 4대 사정기관 책임자들에 대한 섀도캐비닛(그림자 내각)을 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 공동정부를 만들어 서로 개혁의 동반자이자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총선은 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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