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사생활의 시대는 끝났다
[스페셜리스트│IT]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산업부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sanhkim@donga.com | 입력
2012.04.25 15: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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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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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겁에 질렸다. 인터넷 때문이다. 언론은 연일 인터넷 때문에 우리의 사생활이 발가벗겨진다고 걱정한다. 인터넷과 사생활, 전혀 별개의 두 단어인데 이 두 낱말이 결합되면 사람들은 엉뚱한 네 글자 단어를 떠올린다. ‘감시사회’.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 탓이라고 한다. 1949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의 소설 ‘빅 브라더’ 이야기도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수없이 변주된다. 물론 인터넷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페이스북에는 하루에 5억명 이상이 접속한다. 개인의 정보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특정 기업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간혹 우려되는 언행도 보인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우리가 구글을 믿어도 되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그러면 당신은 정부를 믿겠습니까”라는 엉뚱한 답을 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사생활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가 홍역을 앓았다.
물론 슈미트 회장의 얘기는 틀렸다. 선거로 뽑힌 정부와 일개 사기업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탄핵당하기도 하고 적어도 선거에 의해 시민들로부터 심판받는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진은 시민들에게 심판당하지 않는다.
반면 저커버그의 말은 함의가 깊다.
농사가 주된 산업이던 시절 마을을 짓고 모여 살던 인간은 끊임없이 이웃으로부터 사생활을 침해당했다. 사는 공간이 일하는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만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웃 사이에 비밀이란 건 거의 없었다. 정이 넘치는 사회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사회는 갑갑하고 탈출하고 싶은 관습과 관행의 감옥이었을 테다.
그러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도시에 모여 살았다. 이웃과도 대화를 섞지 않게 됐고, 일하는 공간은 거주하는 공간과 멀리 떨어졌다. 사생활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지켜졌다. 그 대신 반대 급부가 생겼다. 우리는 옆집 이웃조차 믿지 못하게 됐다. 대가가 컸다. 앞집 사람이 나눠준 음식보다 지구 반대편을 돌아온 수입농산물을 더 믿어야 했고, 뒷집 아이 옷을 물려받는 대신 아동복 매장에서 새 옷을 사야만 했다.
사생활의 시대는 개인 사이의 신뢰를 급감시켰다. 적어도 ‘거래’에 있어서는 그랬다. 우리는 이제 믿을 만한 사람 대신 믿을만한 브랜드를 믿는다. 내 주위의 믿을 만한 사람은 나와 같은 일을 하지, 토마토를 기르거나 닭을 잡아 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때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이 개인에게 사생활을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개인은 이제 이곳에 친구들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영화를 즐겨 보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시시콜콜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올린다.
이제 닭을 잡아 파는 농가 주인이 페이스북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의 페이스북 친구 100여 명이 모두 그 닭을 사먹는다면? 30년간 닭만 길러온 이 사람의 ‘타임라인’(페이스북 게시판)을 보니 예의도 바르다면? 그 사람의 닭을 주문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 사람의 사생활을 알고, 그 사람의 개인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소비자를 고르면 된다. 만약 내가 페이스북에서 “제품을 산 매장에서 소리를 지르면 환불과 함께 상품권도 받을 수 있지” 따위의 얘기를 친구들과 나눈다면 소상인들은 내게 물건을 팔지 않을 것이다.
이미 페이스북은 이런 식으로 상거래의 신뢰 자원이 됐다. 신용평가회사가 크레디트 카드로 개인의 신용을 보증해준 것처럼 페이스북이 ‘타임라인’으로 개인의 신뢰를 보여주기 때문이이다. 도시화는 생산성은 높였지만 개인의 평판을 희생시켰다. 인터넷은 사라진 평판에 세계를 광속으로 흐를 기회를 부여했다.
사생활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이 선언은 음울하지 않다. 미래엔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