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후보단일화와 정신분열증

[스페셜리스트│지역]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장


   
 
  ▲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  
 
지난 총선은 지겨웠다. 지겨운 까닭은 단순했다. 누가 야권 대표 선수로 알맞은지를 둘러싼 논란 탓이다. 선거구마다 새누리당 후보가 나섰고, 이에 맞설 야권 단일 후보를 고르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들였다.

이른바 시민사회단체들에 소속된 몇몇이 나섰다. 그런데 그이들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드는 과정이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이들은 시민(또는 민중)들로 하여금 자기 역할과 권한을 하도록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그이들은 시민(또는 민중)들을 대표해서 시민(또는 민중)의 권한을 대리 행사하고 싶어했다.

이른바 시민(또는 민중)들은 시민사회단체들에 소속된 그 몇몇에게 권한을 넘겨준 적이 전혀 없었다.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된 그 몇몇은 스스로를 ‘경남의 힘’이라 했고 기초자치단체별로는 이를테면 ‘창원의 힘’이라 했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들에 소속된 그 몇몇 또한 시민(또는 민중)들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사실 넘겨받을 방법도 없었다.)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된 그 몇몇은 야권 단일 후보 선정을 위해 때로는 폭력적 방법까지 동원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경남에서는 통합진보당 중심으로 진행됐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얼굴만 시민사회단체고 몸통은 통합진보당’이라고까지 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실제로 이렇게 재미가 없었던 데 더해 치명적 약점까지 근본으로 갖고 있다. 정당과 후보가 이를테면 유권자들에게는 골라잡을 수 있는 상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선택권이 무시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데 자기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는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밀려 사퇴하고 말았다. 다른 선거구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가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밀려 그만두는 일이 벌어져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뻘쭘해지고 말았다. 진보신당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반새누리당 연대와 야권 후보 단일화 주장에 밀려 이 소수 정당은 찌그러들고 말았다.

야권 후보 단일화 논란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 더욱 암담하다.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은 자기 후보를 낼 수 있을까. 통합진보당은 자기 후보를 낼 수 있을까. 지금 사정으로 보면 통합민주당만 자기 후보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할까.

후보 단일화는 국민적 차원에서 정신분열증을 불러온다. 민주통합당의 가치와 통합진보당의 가치와 진보신당의 가치와 녹색당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골라잡을 수 있는 상품(후보)은 하나밖에 없다. 현재 상태대로라면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의 가치를 버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은 야만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결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결선투표제만 도입하면 된다. 게다가 결선투표제 도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공직선거법만 바꾸면 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하는 후보가 나오면 그대로 당선을 확정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1차 투표에서 1등 한 사람과 2등 한 사람을 내세워 결선 투표를 진행하면 된다.

비용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후보인데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이런 정신분열 상태를 견디기 위해 마셔대는 술값만 모아도 결선투표에 드는 비용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여론을 형성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은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만 있지는 않다. 신문·방송·통신 등 미디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아니 이런 미디어들이 더욱 잘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론 형성과 의제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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