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중국인 이야기
[스페셜리스트│국제] 김성진 연합뉴스 기자·국제국
김성진 연합뉴스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5.09 15: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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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진 연합뉴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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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인의 주목을 끈 두 중국인이 있다. 바로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과 세도가에서 급전직하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가 그들이다.
중국판 ‘쇼생크 탈출’사건을 일으킨 천광청은 18개월간 산둥성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8개의 벽을 넘고 19시간을 걸은 다음 주변 인권운동가의 협조로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피신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후 중국에서 ‘자유롭게’ 지낸다는 조건으로 미 대사관에서 나왔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이틀간 억류됐다는 아내를 면담한 후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미국 유학행을 결정한 상태다.
보시라이는 잘나가던 정치국원으로 이른바 ‘충칭모델’이라는 중국식 사회주의 개발 모델을 추진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주도하다가 영국인 실업가 독살 사건에 연루된 아내 문제 등 부패 혐의로 낙마했다.
두 사람의 인생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BBC에 따르면 천광청은 어려서 시력을 잃고 맹인학교에서 공부해 대학에 진학, 의학을 배웠고 나중에는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해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위한 변론활동을 해왔다. 그는 특히 ‘한자녀 갖기’ 정책으로 임신 후기 강제 낙태 등의 반인권행위를 일삼는 당국에 반대하다가 4년형을 살고 석방 이후에도 계속 사복경찰들로 구성된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채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 당했다.
보시라이는 중국 공산혁명 1세대의 자제인 소위 ‘태자당’ 출신으로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부하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부시장의 미국 총영사관 도피 사건을 계기로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됐다. 그의 아내가 저지른 영국인 독살 사건은 3류 추리소설을 연상케 한다.
천광청 사건은 중국 사회의 인권 현실을 국제사회에 다시 알리는 한편 중국 내에 비교적 탄탄한 인권운동가 네트워크가 존재함을 확인해줬다.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권력층의 부패상과 암투를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권력의 속성상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유혈 진압하면서 사회 불만 세력을 힘으로 누른 채 고속 경제 성장을 구가했으나 이제는 공평과 정의에 관한 사회적 성찰 없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가 힘들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내세운 조화사회는 사실 천광청 변호사 같은 인물까지 껴안고 갈 때 가능한 것이다. 아울러 보시라이와 같은 권력층 부패 척결과 정치개혁을 통하지 않고서는 공산당 일당독재에 대한 중국 국민의 신뢰를 담보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변화는 중국 한 나라의 변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과 더불어 ‘G2’의 쌍벽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의 진로에 따라 세계의 향방도 영향을 받게 돼 있다. 특히 중국과 이웃한 북한도 큰 입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인권의식이 높아질수록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가 더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북한 내 인권 개선에 대한 압박 요인이 된다.
올해는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정부의 대중 관계 설정이나 지금까지 중국상황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는 주로 경제 및 안보 관련 문제에 치중해왔다. 특히 중국 인권 운동가에 대한 보도는 주로 서방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받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주재 특파원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의 중국 인권 상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보도가 아쉬운 대목이다.
동남 아시아에서는 수십년 동안 철옹성 같던 미얀마의 군부독재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의회 원내 진입을 다시 허용할 정도로 변했다. 이 같은 상황들을 볼진대 인권운동가나 반체제 인사의 존재조차 찾아보기 힘든 북한의 변화도 먼 장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