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몸통, 이영호의 수난

[제259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사진 / 한국일보 조영호 기자


   
 
  ▲ 한국일보 조영호 기자  
 
지난 3월 20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민간인 사찰의 몸통을 자처한 전 청와대 비서관 이영호씨의 원맨쇼 때문이다. 고함치듯 때론 윽박지르듯 자신의 할말만 쏟아 붓고 회견장을 떠나려던 이씨의 태도가 사태의 발단이 되었다.

20층 기자회견장을 나서면서부터 이영호씨는 기자들에게 막혀 사면초가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떤 질문에도 입을 다문 채 빠져나가려는 이영호씨에게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이씨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기자들과 실랑이 끝에 겨우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1층 로비에서 문이 열리자 더 많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부터 시청역까지 도망치는 이씨를 끈질기게 잡는 기자들에 의해 이씨는 안경이 벗겨지고 바닥에 나자빠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교통체증이 발생했고 급기야는 주변에 경계를 서던 경찰까지 투입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뒤 시종일관 자신의 할 말만 늘어놓은 이영호씨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수많은 언론사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이용하려 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씨의 수난은 자초한 일이다. 하지만 도로까지 끌고 가다시피 하며 과열된 취재 경쟁을 벌인 기자들도 분명 잘못이 있다.

그날 도로에는 서로 뒤엉킨 기자들 때문에 일대가 교통대란을 겪었다. 수많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취재에 열중하는 기자들에게 한 운전자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차 속에 위급한 환자가 있으니 길을 열어달라며 외쳐대는 운전자의 소리마저 기자들의 고함소리에 묻혀버렸다. 너무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이영호씨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도로를 점령하며 법규를 무시할 권리가 기자들에겐 없다. 다소 광적이었던 기자들의 취재 모습이 그날 시청 앞을 지나는 수많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종편과 인터넷 매체의 급증으로 취재진의 수가 많아지면서 현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현장의 취재 질서는 기자들의 몫이다. 질서를 무시한 취재경쟁은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기자정신이 도를 넘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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