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와 네이버

[언론다시보기]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유한킴벌리는 공익 캠페인 ‘우리강산 푸르게’를 1984년에 시작했다. 캠페인의 핵심은 간판 제품 수익의 1%를 조림사업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이 캠페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친환경 마케팅의 대명사가 됐다.

역설적이게도 유한킴벌리는 나무 자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으로서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화장지, 유아용 기저귀 등 주력 제품의 원료가 펄프이기 때문에 해마다 산림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한킴벌리는 ‘우리강산 푸르게’ 캠페인 덕분에 국민들 사이에서 녹색 기업이라는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나는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가 언론과의 관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때마다 네이버와 유한킴벌리를 비교하곤 한다. 또 네이버 측에 대해 유한킴벌리의 길을 가라고 조언하곤 했다. 특히 유한킴벌리가 동식물을 품는 숲을 지속적으로 육성함으로써 사회와 시민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면서 기업 이미지를 반전시킨 점을 주목하라고 말했다.

검색에 뿌리를 둔 인터넷 포털 서비스의 주재료는 디지털 콘텐츠다. 그 중에서도 뉴스 미디어가 생산하는 저널리스틱 콘텐츠(Journalistic Contents)가 핵심 재료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면 지식인, 블로그 등에 게재된 정보의 원재료 대부분이 뉴스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런 뉴스를 매일 만들어내는 언론사는 네이버에 늘 신선한 재료를 공급하는 숲과 같은 존재다. 숲이 울창하고 건강해야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잘 자란다. 개별 언론사들도 재정이 튼튼하고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해야 좋은 저널리스트들이 자부심을 갖고 질 좋은 콘텐츠들을 화수분처럼 만들어낸다.

그런데 네이버는 유한킴벌리와 달리 지난 10여 년 동안 공룡처럼 저널리스틱 콘텐츠를 포식만 했다. 그 결과 언론계는 식물과 동물이 살기 어려운 민둥산으로 변해버렸다. 특히 지난 2009년 네이버가 도입한 뉴스캐스트라는 희한한 변칙 서비스는 한국 언론계를 뉴스캐스트에 적응한 특수 종류만 서식하는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지난달 4일 IT 전문가들의 모임인 IT클럽이 주최했던 ‘네이버 뉴스캐스트와 미디어 발전방안’ 포럼은 뉴스캐스트 등장 이후 뉴스 콘텐츠 생태계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자리였다.

우선 뉴스캐스트 이후 개별 언론사 트래픽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점이 확인됐다. 즉 언론사 전체 트래픽 중 뉴스캐스트를 통한 트래픽이 평균 60~70% 대에 이르러 언론사 사이트들이 네이버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언론사들이 자체 사이트 플랫폼 혁신과 같은 과제를 제쳐 두고 뉴스캐스트에서 트래픽을 모을 수 있는 방안 모색에 매달리는 현상의 근본 원인이다.

숲이 쇠퇴하면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동물들도 숲을 떠난다. 그리고 숲에 의존하는 산업도 쇠퇴한다. 유한킴벌리는 국민소득 2000달러 시대에 이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숲을 살리는 데 기업의 핵심역량을 투입했다.

네이버의 언론 관련 정책과 대응을 보면 언론계가 황폐화될 경우 포털 산업기반이 무너지고 나아가 한국의 지식산업마저 쇠퇴할 것이라는 점을 얼마나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

네이버는 뉴스캐스트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뉴스 서비스는 수익과 트래픽 측면에서 모두 비중이 낮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블로그와 카페 트래픽이 뉴스보다 훨씬 높고 광고 수익 대부분도 블로그,카페, 지식인 등 UCC 검색에서 나온다는 식의 해명이다.

하지만 뉴스라는 콘텐츠는 뉴스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콘텐츠의 원재료가 되기도 하고 지식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떠받치는 토양 역할을 한다.

네이버는 이제 28년 전 유한킴벌리가 숲이 존재하지 않으면 화장지 제조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고 자성했던 것처럼 프로정신과 자부심을 지닌 저널리스트들이 저널리즘이라는 숲을 떠나면 검색포털 기업도 머지않아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진심을 갖고 저널리즘 숲을 살리는 데 나서야 한다.

만약 네이버가 또 옛날신문 아카이빙 지원 사업과 같이 언론사를 분리시키는 당근 전략이나 편집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뉴스캐스트와 같은 꼼수를 들고 나온다면 1990년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강력한 시장지배력 때문에 직면했던 기업 분할론과 같은 거센 역풍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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