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보수화 외면, 언론은 괜찮은가?
[스페셜리스트│법조] 심석태 SBS 기자·법학박사
심석태 SBS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6.13 15: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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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석태 SBS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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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포기해버린 걸까. 대법관 4명이 한꺼번에 바뀌는데 대형 교통사고 수준으로도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이 퇴임할 때보다도 언론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법관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별 기사가 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사 써봐야 아무 소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블랙박스도, CCTV 영상도 없어서? 이유가 뭐든 대법원 구성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 이젠 정말 고민해봐야 한다.
대법원은 최고법원이다. 대법원은 온갖 이해관계의 다툼과 갈등을 정리하는 최후의 심판자다. 종종 과소평가되지만 대법원의 권능은 막강하다. 개별 사건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국회가 만든 법률은 법원의 해석을 통해 구체화된다. 수동적으로 국회가 만든 법을 그저 ‘해석’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법에도 없는 기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부분만 살펴보자. 형법은 ‘사실 적시’에 대해서만 위법성 조각 사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허위사실과 관련해 ‘상당성’이라는 면책 요건을 만들어 법 개정 없이도 표현의 자유를 대폭 확장한 것이 대법원이다. 아예 면책 규정이 없는 피의사실공표죄의 면책 기준도 만들어냈다.
반대로 1심과 2심이 엇갈렸던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는 면책 요건을 좁게 설정해 표현의 자유를 축소했다. 최근에는 하급심에서 유무죄가 엇갈린 공무원의 시국선언을 법이 금지한 집단행동으로 보고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구성은 노동이나 경제정의, 소수자 보호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전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직결되는 일이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은 유죄와 무죄가 8대 5로 갈렸다. 대법원 구성이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그나마 대법원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던 대법관 일부가 또 퇴임하고 그 자리를 보수 성향 일색으로 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어려운가? 소수파 강화로 균형을 잡는 게 아니라 아예 소수파의 뿌리를 뽑고 있는데 언론부터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대법관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 13명의 후보가 추천됐다는 소식, 그리고 대법원장이 그 중 4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는 소식이 일사천리로 전해졌다. 대다수 보수 언론과 방송은 기쁜 마음으로 또는 무덤덤하게 이 소식을 전했다. 특히 방송에서는 휴일 스케치 기사만큼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저마다 심층 뉴스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말이다.
종신직이라는 특징은 있지만 미국에서는 대법관은 물론 연방 판사가 바뀌는 것도 화제가 된다. 대법관이 퇴임하거나 사망하면 후임을 놓고 생방송 토론도 열린다. 2005년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거의 국상 분위기였다. 미국인들이 유난히 우리보다 법조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아니면 미국 언론이 사법부 구성까지 이벤트화해서 관심을 끄는 재주가 뛰어나서일까. 하지만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이면서 임기도 지켜지지 않을 여야 지도부 구성을 보도하는 데 들이는 신문, 방송의 노력을 보면 이게 단순히 본질적 기사 가치에 대한 판단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도 문제지만 허구한 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주창하는 대법원도 국민의 전체적인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적 구성을 고집해서는 계속 ‘불통’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지금처럼 국민 전체의 생각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비슷한 성향에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구성된다면 차라리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해서 그나마 다양성 면은 조금 나은 헌법재판소를 실질적 최고 사법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싹트지 말라는 법도 없다. ‘독수리 5형제 시대’를 경험한 국민들이 권위주의적 대법원으로의 회귀를 반갑게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다면 너무 순진하거나 오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