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의 언론관

[언론다시보기]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 2월 17일 MBC ‘제대로 뉴스데스크’ 2회 분.
 “다른 질문인데요.”(MBC 기자)
 “다른 질문 안 돼요.”(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MBC 파업….”(MBC 기자)
 (말을 가로막으며) “분위기가 다 깨집니다.”(박 전 위원장)
 “MBC 파업 중인데요. MBC 파업 관련해서 좀 견해를….”(MBC 기자)
 (대꾸없이 차량에 탑승)

# 6월 22일(MBC 파업 145일째)-서울의 한 복지관 배식봉사장에서.
“MBC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고 직원 대량 징계사태까지 벌어졌다.”(MBC 기자)
“파업이 징계 사태까지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노사 간에 빨리 타협하고 대화해서 정상화되길 바란다. 하루 속히 정상화되길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결국 가장 불편하고 손해보는 것은 국민이 아니겠나.”(박 전 위원장)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판이한 내용. 하지만 불행히도 답변자는 같은 사람이다. 박·근·혜. 그가 넉달 전 답변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며, MBC파업이 5개월에 접어들 찰나에 입을 연 까닭은 또한 무엇인가?

우선 넉달 전 박 의원의 답변 태도를 보면 MBC 파업 사태에 대해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기는 누가 옆에서 간곡히 코치라도 하지 않았다면 MBC 구성원들이 따뜻한 사무실을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는 연유를 알 턱이 있었겠는가. 그런 갈등이 MBC만이 아니라 KBS, YTN 등 공영방송, 연합뉴스 같은 국가기간통신망에서도 잉태되고 있음은 더더욱 몰랐을 터이고.

그런데 드디어 넉달 만에 MBC 파업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어렵사리, 아주 어렵사리 나온 MBC 파업 관련 코멘트. 하지만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라고 했는가. 사태의 본질은 제쳐놓고 “안타깝다”느니, “타협하고 대화하라”느니 선문답만 반복했다.

이런 원론적 발언은 박근혜가 아직도 MBC사태, 더 나아가 한국공영언론의 파업 도미노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사태의 본질은 함량미달의 대통령 측근(대선캠프 특보 포함)이 낙하산 타고 내려와 공영언론을 망가트린 데 있다. 따라서 그 독소를 제거하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결국 가장 불편하고 손해보는 것은 국민 아니겠나”라는 말도 순박하기 짝이 없는 덕담 수준의 코멘트. 박 의원은 MBC파업 장기화로 시청자들이 혹시 ‘무한도전’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공영언론 중에서도 민주언론을 자임한 MBC가 망가짐으로써 가장 손해를 보는 게 국민이라는 말이 그르지는 않으나 손해라는 말보다는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공영언론이 민주언론의 본령을 외면하는 순간 국민은 눈과 귀를 차단당하기 시작하니까.

전반적으로 박 의원의 이번 발언은 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자기 살을 깎고 싶지도 않은 심정에서 나름 주판알을 튕겨 다듬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만간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들어갈 그로서는 현 정권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게다가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없다. 그러니 그로부터 공영언론 사태의 내실있는 처방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일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의 발언에서 언론자유, 민주언론 등 파업 사태를 몰고 온 화두를 눈곱만큼도 엿볼 수 없음은 심히 유감이다. 조만간 국회가 열려 공영언론 파업 도미노에 대한 쟁론이 분분할 것이다. 한편 많은 대선 후보들 스스로 자신의 언론관을 펼칠 것이다. 간곡히 바라는 바 적어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자라면 언론에 대한 식견이 ‘고상하지는 못해도 천박하지는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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