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2'와 한일 군사정보협정

[스페셜리스트│국제] 김성진 연합뉴스 기자·국제국


   
 
  ▲ 김성진 연합뉴스 기자  
 
이탈리아와 결승전에서 예상을 깬 스페인의 4대 0 대승. 역시 ‘유로 2012’는 재미있다. 앞서 지난달 말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는 유로존 재정위기 타개를 위한 의미있는 진전을 봤다. 독일이 그동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부채국가들에 대해 주장해온 엄격한 긴축정책 안에서 한발 후퇴해 은행에 대한 구제기금의 직접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대신 회원국들이 향후 은행동맹, 재정동맹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유럽 17개국이 가입한 유로존에서 통용되는 통화 ‘유로’의 탄생은 탈냉전과 연관이 있다.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이 허물어지는 와중에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합하면서 유럽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EU는 이후 동유럽 국가들까지 포함해 회원국이 27개국에 이르고 교역 및 통상 동맹에서 통화동맹으로 나아가 유로존이 탄생했다.

현재 유럽이 아무리 재정위기로 지지고 볶아도 어디까지나 유럽 공동체라는 큰 틀에서 이뤄진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재정위기가 심화돼 그리스가 탈퇴하거나 유로존이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그만큼 이번 재정위기는 유럽이 한 단계 도약할지 시험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주권국들이 저마다 자발적으로 지역공동체를 이뤄가는 모습은 그 자체가 인류사의 새 실험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가 속한 동북아 상황은 어떤가. 중국, 일본과는 아직 지역공동체라는 의식조차 희박한 채 몇몇 섬들을 둘러싸고 구시대의 산물과 같은 영토문제로 아직도 티격태격하는 형국이다. 유럽 국가끼리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으나 세계 어느 지역보다 가파른 동북아 군비지출은 자칫 지역 내 무력 충돌과 전쟁의 그림자마저 드리우고 있다.

안보문제는 차치하고 경제문제만 보자. 유럽에서 채무국인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경우 다른 나라가 감 놔라 배 놔라 해도 아무래도 유럽이라는 한 동네에 사는 나라끼리 안면몰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주권까지 상실했다가 눈물겨운 금모으기로 대변되는 ‘자구’ 노력 끝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때 지역 차원에서 유럽처럼 돕는 손길은 사실상 없었다. 그리스가 긴축안을 놓고 여러 차례 시위를 벌였지만 과거 우리처럼 고금리 등 혹독한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이 줄도산하고 한강변에는 자살자가 속출했던가. 이후 우리는 시장과 자본의 철저한 경쟁논리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어왔다. 그 부작용으로 내부의 양극화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수백만 비정규직 문제에 봉착했다.

최근 불거진 한·일 군사정보협정 문제에는 탈냉전 시대 중국의 부상을 겨냥해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꾀하는 미국의 안보전략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즘 미 국무부 웹사이트에는 동해냐, 일본해냐를 둘러싼 재미 한·일 동포간의 청원전이 있었다. 일본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중·일 영토 분쟁 대상인 센카쿠 문제를 미국 유력지에 광고하겠단다. 태평양 건너 미국만 바라는 동북아에서는 축구조차도 ‘유로 2012’는 언감생심이고 ‘숙적 한·일전’ 같은 도토리 키 재기나 할 판이다. 한마디로 유럽과는 노는 물이 다르다.

안보문제를 둘러싸고 동북아 지역주의의 틀이 될 수 있는 북핵 6자회담은 2008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이번에 한·일 군사안보협정의 중요한 명분은 북핵 및 미사일 문제였다. 주지하다시피 미국과 일본은 북한 미사일 문제를 명분으로 중국을 염두에 둔 미사일방어망(MD)을 구축해 왔다. 그러고 보면 역시 동북아 지역공동체도 북한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고, 그 핵심 당사자는 당연히 우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유로 2012’에 버금가는 아시아 축구는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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