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 48년에 던지는 질문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오늘은 머리 속에 맴도는 질문들을 쏟아내 보려 한다.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왜 우리에게 저널리즘이 필요한가? 너무 흔한 질문이고 걸핏하면 들먹였던 관념적 물음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질문들이 달리 들린다.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걸 빼먹고 있다는 생각이다. 저널리즘의 존재의 이유! 이 질문을 던지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지배 권력으로 자처하는 집단이 물을 것이다. “저것들을 어디다 써먹지?”. 요즘 기업들도 묻고 있을 게다. “우리에게 저널리즘이 필요한 건가?” 그리고 시민들도 물을 것이다. “우리에게 저런 저널리즘이 왜 필요한 거지?” 묻는 주체에 따라 우리의 답은 얼마나 달라질까? 결국 우리는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에 답하기 전에 누구의 물음에 답할 것인가부터 다시 확인하고 시작해야 한다.

역사와 시민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면 답은 조금 더 명확해진다.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성장도상의 국가에서 저널리즘은 시민정신과 민주공동체의 건설에 필요하다. 권력과 무력에 의해 짓눌리고 제한당한 시민의 말과 글을 되살려 내기 위해 저널리즘은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은 책에 적힌 내용이고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지 지금도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저널리즘에 대해 더 분명히 규명해주는 것은 우리가 겪는 시대적 현실이다. 저널리즘이 왜 꼭 필요한지는 저널리즘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답해야 하고, 저널리즘이 지금 요구받고 있는 과제들이 변론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물어보자. 우리에게 지상파방송 채널은 이만큼이나 필요한가? 가장 필요 없는 채널은 어느 것인가? 종합편성 채널들은 또 어떤가? 그것들이 없어서는 안 될 이유는 뭐지? 신문과 인터넷 언론에 대해서도 물어보자. 저 신문은 꼭 있어야 할까? 어떤 신문들이 살아남아야 사회가 발전하지?

그런데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정부? 기업? 시민사회?
불행히도 이 질문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어느 쪽에 묻든 지금의 기성 언론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만큼 절실히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위기이다. 권력의 4부가 아니라 정보통신 체제의 하부조직이 되어가면서 저널리즘의 토대가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시민과 사회가 꼭 필요로 해야 할 이유가 희박해지고, 저널리즘 스스로 제 역할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토대는 계속 무너져 갈 것이다.

용기를 내 더 두려운 질문으로 나아가보자.
저널리즘이란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닐까? 저널리스트로서 우리는 어느 만큼 동질성을 갖고 있고, 그 동질성에 의한 저널리즘이라는 실체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리고 저널리즘이 존재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우리는 이미 놓아버린 건 아닌가? 넋두리 같이 되어 버렸지만 언제나 질문은 답을 내포하고 있다. 정확하고 솔직한 질문이 답을 찾아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올바른 저널리즘은 이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기자들이 올바른 저널리즘을 고민하고 서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공유하고 함께 찾아나서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기자협회 48주년, 우리는 선배 기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굴곡도 있었고, 정론직필을 벗어난 곡학아세도 있었지만 선배들은 일제 강점기에도, 전쟁 중에도, 독재치하에서도 이 땅의 저널리즘을 지켜왔고 저널리즘에 의미를 불어 넣어 우리에게 이어주었다. 무한경쟁과 신자유주의의 범람이 제국의 식민통치나 군벌의 강압적 횡포보다 훨씬 상대하기 어렵다고 변명과 핑계를 댈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는 선배들이 갖지 못했던 것도 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우리에게는 시민이 있다. 참된 저널리즘을 지지하고 언론 현장에 뛰어들어 언론인보다 먼저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민사회세력을 우리 선배들이 언제 가져 봤던가. 함께 묻고 고민하며 길을 찾자. 우리는 기자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