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현상과 프레임
[언론다시보기]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9.19 15: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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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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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서울대 출신 벤처사업가로서 한국 IT산업 태동기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점이다.
누가 내게 둘 중에서 벤처 기업가 역할 모델을 꼽으라면 이 대표를 꼽을 것이다. IT 얼리어댑터이자 저널리스트로서 1990년대 초반부터 두 사람의 벤처 활동을 쭉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상식은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크게 차이가 난다. 다수 국민들은 이 대표 보다 안 원장을 한국 IT벤처계의 아이콘(icon)으로 여긴다. 특히 20~30대 청년들은 성공한 IT벤처 기업가로서 안 원장의 정치, 사회적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중의 이런 인식은 두 사람의 2000년대 이후 활동 차이에서 빚어졌다. 안 원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명성을 확대해왔고, 이 대표는 200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해 ‘왕년의 벤처스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산업계 시각에서 보면 보안업체 창업자가 IT벤처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 자체가 세계 IT산업계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이는 보안 산업의 본질이 IT의 기간산업이 발달하면 뒤따라가는 종속 산업으로서 혁신이나 일자리 창출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세계 IT업계의 중심은 역시 컴퓨터 운영체제(OS), 반도체, 응용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 하드웨어 제조 등 5대 분야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등 미국 IT벤처 스타들은 모두 이 분야에서 기존 질서를 뒤엎은 인물들이다. 이찬진 대표도 ‘아래아한글’이라는 토종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어 오늘날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었다.
안 원장이 IT산업의 비핵심분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대한민국 IT 및 벤처 아이콘이 됐을까. 그 해답을 이른바 인지과학의 ‘프레임 이론(Frame Theory)’ 관점에서 한국 초창기 IT 저널리즘을 되돌아봄으로써 찾을 수 있다.
프레임 이론을 다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했다. 레이코프는 정치인과 언론이 특정 단어를 선택하면 그 단어가 프레임을 형성하고 유권자와 뉴스 수용자는 그 프레임 안에서 사고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닉슨 전 미국대통령이 TV에서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연설하는 순간 그는 사기꾼이라는 프레임에 갇혔었다.
국내 IT저널리스트들은 안 원장의 활동 초기 뉴스를 보도할 때 ‘서울대 의대출신 벤처 사업가’와 ‘컴퓨터를 지켜주는 백신 발명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에는 ‘한탕을 노리지 않는 소신 벤처인’, ‘외국산 소프트웨어에 맞서는 토종 소프트웨어’라는 표현을 새로 추가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안 원장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지적하자 재벌 혁신과 관련된 표현들을 안 원장 관련 뉴스에 많이 등장시켰다.
‘의사’, ‘백신’, ‘벤처’라는 창업 초기 프레임이 ‘무료 배포’, ‘소신’, ‘토종’과 융합을 했고, 다시 그 프레임은 ‘대기업 비판’이라는 언어와 접목했다. 참신하고 선한 이미지가 소신 벤처기업가로 진화했고, 다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대변자로 격상됐던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안철수 프레임은 오늘날 안 원장이 국민적 지도자로 부상한 ‘안철수 현상’의 뿌리가 됐다. 일반 국민들은 이런 프레임을 통해서는 보안산업의 속성이나 IT산업에서 실제 차지하는 비중을 객관적으로 알기 어렵다.
이 시점에 IT산업을 담당했던 저널리스트로서 안 원장 관련 언어 선택을 되돌아보는 것은 저널리즘 기본에 대한 자성 때문이다. 필자를 비롯해 상당수의 IT 담당 저널리스트들은 벤처산업을 우호적으로 다루고 ‘벤처 스타’를 발굴하느라 저널리즘의 기본을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 저널리즘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실에 근거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다양한 프레임을 뉴스 수용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완벽한 악인이나 무결점 영웅을 만드는 모노톤의 단일 프레임은 민주주의 사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