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의 '스마트'한 실험

[언론다시보기]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16일부터 18세에서 35세 사이 아마추어 필자를 대상으로 에세이 공모전을 시작했다. FT에 따르면 분량은 3500단어 이내이며 주제는 금융 이슈에서부터 역사, 시사, 과학 등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없다. 글 형식도 기사체를 비롯해 사례 연구, 전망, 세부 테마 탐구 등 공모자가 원하는 형식을 선택할 수 있다.

FT는 온라인을 통해 원고를 접수받아 샤이먼 샤마 FT 칼럼니스트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단이 평가를 하여 최종 당선작을 선정한다. 1등에게 상금 1000파운드를 주고, 또 랜덤하우스 계열 보들리 헤드(Bodley Head) 출판사와 제휴하여 이북(e-book) 형태로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샤이먼 샤마는 공모전 사고를 FT에 게재한 날, ‘내가 글쓰는 이유(Why I write)’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어린 시절 조지 오웰의 에세이에 감명을 받아 칼럼니스트 꿈을 키웠던 것을 회고하고 찰스 디킨스 등 유명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글쓰기를 훈련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FT의 에세이 공모전은 디지털 시대 독자 감소, 광고 수익 감소, 인재 이탈, 영향력 감소 등 사면 초가에 처해 있는 국내 언론 산업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

FT는 이번 에세이 공모전을 심층 지식과 식견을 담은 프리미엄 콘텐츠를 외부에서 널리 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론사가 전통적으로 프리미엄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내부 저널리스트를 통해 직접 생산하거나 대학교수, 전직 고위관료, 소설가 등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아웃소싱 형태로 생산한다.

FT가 독자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인사이트를 외부에서 구하려는 것은 기업이 제품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을 외부에서 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또는 ‘협업 지성(Collaborative intelligence)’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공모전은 언론사가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에 사용했던 방안으로 그 자체가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언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문학 공모전을 비롯하여 논픽션,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뛰어난 외부 필자들을 발굴해왔다.

하지만 FT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요소를 도입해 이전 공모전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세계적 출판사와 제휴해 당선작을 이북으로 출판하려는 계획이다. 이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온라인 서적 판매량의 50%를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이북 출판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FT는 출판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싱글 출판(Single Publishing)’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음반 시장에서 여러 곡을 패키징한 음반 대신 한 곡을 시장에 출시하는 싱글 음반이 혁신을 일으켰듯이 분량이 많은 단행본 형식 대신 핵심 내용을 담은 싱글 출판이 전자책 시장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싱글 출판은 실제 잠재적 필자들이 우수한 콘텐츠를 출판시장에 내놓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시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인 제프 자비스는 ‘구텐베르그’, ‘퍼블릭 파츠’ 등 싱글 이북을 출간해 언론계에서 화제를 모았었다.

잠재적 필자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최신 지식과 인사이트에만 집중해서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싱글 출판에 매력을 느낀다. 아울러 적절한 시점에 자신의 생각을 책 형태로 널리 유포할 수 있는 점에도 호감을 갖는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는 디지털 시대에 언론사가 내부 인재만으로 독자들이 원하는 질 높은 콘텐츠를 제때 생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부 저널리스트가 감당할 수 있는 취재 범위가 제한적이며 또 질 높은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FT가 에세이 공모전을 성공시키면 언론사, 독자, 필자, 출판사 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윈윈’ 모델이 탄생할 것이다. 언론사와 독자는 우수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고, 잠재적 필자는 명성과 보상을 함께 얻을 수 있고, 출판사도 새로운 출판시장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국내 언론사도 FT처럼 디지털 트렌드를 스마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다. 특히 FT가 글쓰기 문화와 이북을 절묘하게 결합한 전략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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