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 TV토론에 거는 기대

[언론다시보기] 주정민 전남대 교수


   
 
  ▲ 주정민 전남대 교수  
 
12월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TV토론의 시기가 돌아왔다. 벌써부터 각 후보의 캠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TV에 나와 대선고지 점령을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TV토론의 백미는 선거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벌어지는 후보 간 토론이다. 국민 모두는 각 후보가 어떤 정책으로 자신을 홍보하고, 상대방을 공격할 것인지, 그리고 누가 우위를 점할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TV토론의 시초는 196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실시된 닉슨과 케네디간의 대결이다. 화려한 경력의 웅변가였던 닉슨은 무명에 가까운 신인 후보 케네디와의 TV토론에서 시종 수세적인 입장을 취했다.

케네디는 시청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힘찬 목소리로 전달했지만, 늙고 초췌한 닉슨은 케네디의 얘기에 ‘나 역시(me too)’를 연발했다. 닉슨은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을 갖고 있었지만 TV토론 이후 선거에서 승기를 잡지 못했다.

닉슨과 케네디의 TV토론 이후 선거에서 TV토론은 유권자가 후보자를 평가하는 행사로 정례화되었고, 후보자의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 이벤트가 됐다.

TV토론은 후보자가 다수의 일반 대중과 직접 만날 수 있고, 상대와 직접적인 논쟁을 하며 자신을 부각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대중 집회와 유세 대신 TV토론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TV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우리나라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TV토론이 시작됐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1997년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후보가 TV토론에 출연한 것이 시초다. 이후 크고 작은 모든 선거에서 TV토론이 실시됐으나 점차 SNS와 같은 뉴미디어 매체들이 나와 새로운 선거운동 도구로 활용되면서 그 위력은 감소하고 있다.

선거에서 TV토론이 주요한 정치수단이던 때는 국민들이 후보자와 후보자의 정책을 접하는데 한계를 가졌던 시절이다. 유권자들은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인 TV토론에 주목했다.

그러나 지금은 후보의 정책과 이미지가 이미 언론을 통해 충분히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TV토론에 유권자들은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후보자들도 TV토론의 허와 실, 그리고 실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TV토론에서 정책경쟁보다는 이미지 관리와 실수 줄이기를 최대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 TV토론보다는 오히려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인간적인 매력을 부각시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적절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만 하면 지지율을 10%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TV토론은 지나치게 후보간 공정성과 균형성을 의식해 의례적인 행사가 되고 있다. 쟁점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와 자유로운 토론보다는 나열식의 질의와 답변, 그리고 엄격한 시간관리와 진행 멘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매번 똑같은 자리배치와 토론형식을 고수해 마치 하나의 TV토론 교범을 모든 방송사가 그대로 따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후보자들이 상호 주고받는 질의와 답변도 형식적인 측면에 머물고 있다. 정책의 나열과 반복, 그리고 퀴즈대회 같은 정답 맞추기식 진행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상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할 뿐 국민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는 논쟁에 유권자들은 지겨워하고 있다.

상대를 마주보며 진지한 설전이 가능한 TV토론은 SNS와 같은 매체가 전달하는 선거정보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유로운 논쟁과 치밀한 논리싸움, 선거라는 전쟁터에 나선 장수들이 적진을 종횡 무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TV토론 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빠르게 변하는 정치현실과 유권자의 눈높이를 반영한 새로운 방식의 수준 높은 TV토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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