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의 굴욕'으로 치러지는 대선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11.14 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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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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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매스미디어와 홍보·광고 영역이 기형적으로 크게 발달한 나라다. 그만큼 국민도 텔레비전에 매달려 산다. 그래서 미국 선거의 꽃은 매스미디어다. 선거전에서 텔레비전 광고와 토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여기에 선거자금을 쏟아 붓는다. 대선 방송광고로 자기 후보의 이미지 홍보도 하지만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만약 미국 선거에서 TV광고할 돈이 없거나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후보의 멋진 모습이나 말솜씨를 내보이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그 후보는 투명인간 신세로 전락한다. 국민 여론 속에서 존재감을 상실하는 것이다.
바꿔 이야기하면 이런 시스템은 기득권을 가진 양대 정당의 교묘한 카르텔이다. 민주·공화 양당의 조직력과 정치후원금 흡수력이 아니라면 소수 정당의 후보들은 명함을 내밀기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상 대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개혁도 불가능하다. 카르텔 속에서 권력을 주고받는 민주·공화 양당은 멋진 구호나 적당한 정책 개선에 그칠 뿐 정치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마치 그림을 붉은 색, 파랑 색 두 가지로 그리는 것과 같다. 진보, 청년, 여성, 녹색환경 등 다양한 색깔이 더해질수록 그림은 나아지겠지만 언제나 두 가지 물감뿐이다.
민주·공화 양당이 불편해하는 정책과 정치제도도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가장 불쌍한 건 후원금만 꼬박꼬박 바칠 뿐 진정 멋진 그림을 기대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권은 이렇게 말살되고 있는데 유권자들은 여전히 선거 캠페인에 즐겁게 참여하며 후원금을 낸다. 이것이 정치다.
대한민국 대통령선거는 이런 미국과 비교해 어떨까? 민주화 이후 우리 대통령 선거는 제법 모습을 갖췄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한꺼번에 이뤄진 덕분이다. 대통령 직접선거권도 없던 우리 국민은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토론과 연설을 TV로 접하는 새로운 경험을 누려왔다.
그런데 민주화 15년이 지나 치러지는 18대 대통령선거는 양상이 달리 전개되고 있다.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대선 후보 방송토론이 없다. 후보별로 갖는 초청 토론회도 없다.
그 이유는 허탈하게도 여당 후보의 토론회 거부이다. 야권 후보가 단일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협공을 받기 십상이어서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일까? 어쩌면 개혁적인 정치 식견과 정책에 대한 파악력, 말솜씨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다는 것을 자인하고 시간을 끄는 건 아닌가?
승리를 목표로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이기기 위해 그런다고 치자. 이럴 때 대선에서의 선택을 위한 정보를 차단당한 국민을 위해 나서줄 세력은 언론이다. 방송에 출연을 못하겠다면 찾아가면 된다. 앉아서 하는 토론 방송을 탐사보도로 바꾸면 된다. 정책과 공약을 비교하고, 후보의 정치 여정과 경력을 헤집어 들추면 되고, 문제점을 따져 물으면 된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침묵한다. 단일화가 ‘옳다, 그르다’를 놓고 공방을 벌이기는 해도 유권자의 선택을 위해 따져 묻지 않는다. 따져 물을만한 방송취재는 언론사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이 모인 ‘뉴스타파’가 맡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뉴스타파가 취재현장에서 쫓겨나고 감금당한다. 유권자의 권리는 생매장된 것에 가깝다. 이 문제에 대한 비판도 흐릿하다. 미국의 방송을 통한 선거운동 시스템이 양당 카르텔이었다면 한국의 선거방송은 집권여당의 전횡과 횡포에 동조하고 있다.
이대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한국의 지상파 방송은 선거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전락한다. 미국에서 TV에 등장 못한 후보가 투명인간이듯 한국에서는 선거판에 끼어들지 못한 TV방송이 허접 허수아비로 남게 될 것이다. 인터넷과 SNS, 마음껏 정치 색깔을 드러내는 몇몇 케이블 뉴스와 종합편성채널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방송사가 자신의 존재 의의를 깎아내리며 침묵하는 이유 내지 목표는 무엇인가? 경영진의 몸보신 아닌 다른 이유를 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