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397세대, '어떡하지?'
[스페셜리스트│증권·금융] 고란 중앙일보 기자·경제부
고란 중앙일보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11.21 16: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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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 중앙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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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도움 없이 중산층에 진입할 수 없게 된 첫 세대’.
‘397세대’ 얘기다. 30대이면서 90년대 학번인 70년대생을 말한다. 서태지와 HOT에서 시작된 아이돌 문화의 자장권에서 10대를 보낸 첫 세대다. 경제적으로 가장 큰 소비계층이 된 데 이어 문화 권력까지 잡았다. 영화 ‘건축학 개론’과 케이블TV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이 397세대다. 필자도 이 세대다.
397세대 앞에 붙는 수식어는 ‘앵그리(Angry·분노)’다. 나이가 들면 응당 보수적이 되련만, 397세대는 지금의 20대인 ‘88만원 세대’보다 더 진보적이다. 아니, 진보적이라기보다는 그냥 현 체제에 불만이 많다. 살아오면서 좀처럼 국가의 혜택이라든지 사회의 보호를 받아보지 못했다.
397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나이,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닥쳤다. 이전에는 경제 고도성장으로 매년 일자리가 수십만 개씩 늘었다. 소위 명문대학 졸업 후, 정 갈 곳이 없으면 가는 곳이 대기업이었다. 1997년을 기점으로 세상이 달라졌다. 1998년엔 기업 대량 도산과 구조조정으로 그해에만 10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 후로는 명문대 졸업장과 고득점 토익 성적표를 내밀어도 정규직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가 돼 버렸다.
20대엔 IMF 외환위기를 겪고, 30대엔 부동산 버블의 희생양이 됐다. 받기는커녕 뺏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397세대는 그래서 ‘자력갱생’의 근성을 길렀다. 내 밥줄은 내가 찾기 위해 다른 어떤 세대보다 더 재테크에 열중한다. 397세대가 사회에 진출한 2000년대 초반, ‘10억 만들기’ 열풍이 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게 재테크에 목메지만 정작 성적은 노력에 비해 시원치 않다. 역시 세상이 받쳐주지 않아서다. 전세계는 지금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대 호황 시기가 끝났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올 지경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386세대가 썼던 전략은 안 된다. 재테크에도 새로운 기준, ‘뉴노멀’이 필요하다.
뉴노멀 시대 논란이 되는 건 20세기를 지배했던 교리, ‘주식 숭배(Cult of Equity)’다. ‘주가는 언젠가 오른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1900년대 초 100에도 못 미치던 미국 다우지수는 현재 1만3000선에 육박한다.
21세기에도 이런 교리가 가능할까.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인 핌코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빌 그로스는 7월 말 자사 홈페이지에 “최근 주식과 채권의 장기수익률 하락세를 감안할 때 주식시장의 연평균 두 자릿수 수익률은 우리가 생전 다시 접할 수 없는 역사적인 돌연변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이렇다. 일단 인구구조의 한계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신규 일자리 창출보다는 은퇴자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생산성 저하는 불 보듯 뻔하다. 또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디레버리징(부채 축소)도 향후 5~10년간 경제성장 및 증시 상승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 110년간 연평균 6.4%이던 경제성장률은 4~5%로 떨어질 것이다. 장기성장률이 떨어지면 증시는 늪에 빠진다.
저성장의 그림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예전처럼 1년 동안 지수가 20%씩 오르던 주식시장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26년간 주식·부동산·채권 등을 포함한 15개 투자상품의 수익률을 비교해 주식이 가장 성과가 좋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로저 이보손 예일대 교수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최근 미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옛날처럼 주식 투자로 연간 두 자릿수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졌지만 현재 안전자산(미 국채)의 수익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을 감안하면 주식 투자로 기대되는 6~8% 수익률은 만족할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10%대 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자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슨 얘기냐고? (필자를 포함한) 397세대는 목표 수익률을 낮춰야 한다. 베이비부머와 386세대가 거뒀던 두 자릿수 수익률을 탐해선 안 된다. 그랬다간 무리한 투자로 돈만 까먹을 수 있다. 마이너스 수익률에 분노만 쌓인다. ‘앵그리 397세대’가 ‘베리(Very) 앵그리 397세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