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선거보도, 열린 민주주의의 적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대선 후보들의 방송토론이 진행된 다음 날 방송보도는 흥미롭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언급조차 되지 않은 방송사도 있고, 박근혜-문재인 간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보도하는 방송 뉴스도 있다.

방송 3사 모두 토론에서의 새로운 내용, 심각한 이슈, 치열한 다툼을 피해 나갔다. 특히 박근혜 후보와 관련해 드러난 사실들-다카키 마사오, 전두환 씨로부터 받은 6억원 등-을 외면해 지적을 받았다. 공격에 쩔쩔매는 박 후보의 모습도 뉴스에서는 빠졌다.

이런 내용들은 그동안 SNS와 일부 인터넷언론에서만 떠돌았을 뿐 지상파 방송사는 언급조차 못해왔으니 토론 중에 등장한 걸 근거로 그동안의 수모를 갚을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닫힌 입은 그동안의 무비판적 보도행태가 외압에 의한 굴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타락이었음을 반증한 셈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지상파 방송사 뉴스와 트위터·인터넷 언론의 뉴스는 전혀 다른 방송토론을 보고 기사를 쓴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선거 보도에서 지상파 방송의 존재감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선거토론을 보고나니 지상파 방송은 이미 공명한 선거에 해악을 끼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바뀌어 있음을 확인한다.

그저 법으로 방송토론 횟수가 규정되어 있으니 할 뿐 내용도 진실도 담겨 있지 않은 토론, 시청률도 저조한 방송, 이미 찍을 후보를 다 골라놓은 뒤에 북 치고 장구 치는 지상파 선거방송이 존재할 이유가 뭐겠는가.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력이 민주적 절차를 따라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이뤄진다. 시민의 민주정치 참여에 필요한 것은 언론의 깊이 있는 정치보도와 선거 이슈에 대한 추적·탐사보도들이다. 언론은 선거를 앞두고 시민이 사회의 현안과 공공의 문제를 더 깊이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정치 참여의 과정이 권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가로막혀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런 문제의 지적과 비판을 회피해 나가는 핑계가 공정과 객관이란다. 중앙선거방송위원회가 정한 대선 후보 방송토론 규칙마저도 공정해야 한다면 야권 후보들이 집권당 박근혜 후보에게 공격을 집중 못하도록 왜곡되어 있다. 그렇게 벌어진 토론마저도 방송사는 한 번 더 공정하게 걸러내 집권당 후보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것이 저널리즘일까?

중립객관의 허울뿐인 원칙을 버리자. 집권 5년은 선거에 앞서 냉엄한 평가와 판정을 받아야 한다. 새로운 집권 5년은 역사적 정통성과 정의로움, 정직함을 검증받아야 한다.

권력을 의심하고 깨뜨려야 한다. 그것은 기층 민중이 언제나 진실이고 정의롭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민세력이 언제나 옳다는 뜻만도 아니다.

집권 5년을 노리는 정치 세력들은 지금껏 선전과 선동, 홍보자료, 이미지 조작으로 자기들의 이해와 관점을 시민에게 강요하고 주입시켜 왔기에 선거에서만큼은 그 가면을 벗겨내고 권력을 시민 편으로 되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기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보라. 정부에 국회에 청와대에 틀어 앉아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는 숱한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누구인가.

선거에서 뽑히고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언론의 검증을 거친 인물들이다. 함량미달의 비리 공직자가 언론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임명되어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오늘의 세태를 보며 언론은 자신의 책임을 뼈아프게 느껴야만 한다. 우리가 열린 민주주의의 적이 되어 온 것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