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랜드 스토리, 그 두 번째

[언론다시보기]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 우병현 조선경제i 총괄이사  
 
어떤 마을에 정보 중개를 활용한 벤처기업이 등장해 몇 년 만에 큰 성공을 거뒀다. 성공의 비결은 뉴스 복제품 진열장이었다. 마을 주민의 70% 이상 매일 한번 이상 이 회사 사무실을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회사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다른 진열장도 만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국내 최대의 실내 공간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실내 공간을 ‘네이버랜드’라고 부르면서 네이버랜드 없는 일상을 꿈꾸지 않았다.

최신 뉴스를 보고 싶어도, 동호회 모임을 하고 싶어도, 게임을 하고 싶어도, 영화를 보고 싶어도 네이버랜드를 찾아갔다. 쇼핑을 하고 싶어도, 개인 여행기를 쓰고 싶어도, 숙제에 필요한 정보를 찾고 싶어도 네이버랜드를 찾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대화를 나눌 때 습관처럼 “네이버랜드 전광판 인기 키워드 봤니?”라면서 말을 시작했다. 저널리스트들도 기사를 작성할 때 ‘충격’ ‘경악’ ‘알고보니’ 등 자극적인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마침내 마치 로마 제국 시절 모든 길이 로마를 향했듯이 마을의 모든 것들이 네이버랜드로 향했다. 정치인들도, 기업인들도 네이버랜드 눈치를 봤다. 마을 언론사마저 네이버랜드의 질서 아래에 복속됐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네이버랜드의 규칙에 맞춰 진화하면서 ‘네이버랜드 DNA’를 새로 지녔다. 네이버랜드 DNA의 실험실 쥐처럼 말초적인 자극에 무한 반복해서 반응하고 네이버랜드 없는 일상사를 꾸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런 DNA는 마을 언론사의 콘텐츠 생산 방향을 바꿈으로써 마을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를 하향 평준화시켰다. 다양한 분야의 고등 지식 줄기는 메말라 흔적만 남았다.

국내 최대 인터넷 회사인 네이버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모습을 ‘네이버랜드’라는 가상 스토리를 통해 정리해봤다. 디지털 시대 사이버공간은 인류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고 나아가 인류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문명 공간이다. 또 국내 대형 포털은 한민족의 한글 문명을 쌓아가는 유일무이한 사이버 공간이기도 하다.

네이버랜드 스토리는 뉴스복제 서비스와 뉴스캐스트가 한글 문명 공간을 어떻게 파괴해왔는지를 고발한다. 또 이런 상황이 더 지속되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를 경고한다.

실제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점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의 동명의 책)’의 뇌를 닮아가고 있다. 네이버의 지식 창고 역시 옛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처럼 쓸모없는 정보 집합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네이버의 뉴스 지배 현상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한국 언론계와 사회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네이버가 2013년부터 뉴스캐스트를 뉴스스탠드로 변경하기로 한 조치에 대해 변변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네이버 뉴스 지배의 본질을 직시하고 그 해결에 절박하게 매달려야 한다.

첫째, 네이버는 국내 언론계 지배력의 뿌리인 자체 뉴스 서비스를 하루 빨리 중단해야 한다. 뉴스 복제 서비스는 세계 인터넷 흐름과도 크게 동떨어져 있으며 한국 인터넷 문화를 돌연변이로 만드는 주범이다.

둘째, 뉴스 복제 서비스 독점 폐해를 흐리기 위한 뉴스캐스트와 그 후속 제도인 뉴스스탠드 서비스도 함께 중단해야 한다.

셋째, 네이버는 구글처럼 외부 정보 검색용 검색 엔진을 제대로 만들어 언론사 뉴스 사이트 링크 정보만을 중개해야 한다. 링크 정보를 중개할 때도 독일 정부가 추진중인 인접 저작권(ancillary copyright) 개념에 따라 언론사와 광고수익을 나누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물론 위에 제시한 방안은 현재 게임 규칙 아래서 영원히 실현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네이버가 이윤을 추구하고, 핵심 경쟁력을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사기업이기 때문이다. 또 언론계 역시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어 같은 목소리를 내고 함께 행동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공적 접근법이다. 환경오염처럼 시장이 실패한 분야에 정부가 개입하듯이 디지털 한글 문명의 오염과 파괴라는 시장의 실패에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숱한 과제를 처리해야 한다. 네이버의 뉴스 지배가 야기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반드시 최우선 정책 과제 목록에 올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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