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둬유(Laissez faire)!'

[언론다시보기]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에겐 여러 가지 수사(修辭)가 붙는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부녀 대통령’, ‘독신 대통령’ 등. 그런데 더 중요한 수사가 있다. 바로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이다. 단순히 다수가 지지한 지도자가 아니라 절반 넘는 투표자가 그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맹점을 노정하는 것처럼 과반 득표 당선은 더 큰 맹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지지했으니 이제 무엇이든 관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착각, 또는 교만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실 미구에 막을 내릴 정권은 과반에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고도 마치 유권자의 전폭적 지지를 얻은 것처럼 전횡을 일삼았다. 거의 모든 분야에게 그랬지만 언론 분야에서 특히 그랬다. 공영매체는 ‘낙하산’ 융단폭격으로 만신창이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파업 도미노는 조직에 치명적인 상처와 수다한 해직자를 낳았다.

어느 면 당연한 결과였다. 공영 매체를 국정 홍보의 하수로 삼겠다는 정권의 치졸한 의도가 그대로 실행에 옮겨진 것이기 때문에.

언론은, 특히 공영 언론은 내달 출범할 새 정부의 언론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명천지 21세기에 군부독재 시절에서나 있을 법한 각종 언론 탄압과 왜곡 사태가 줄을 이었던 현 정권의 전철을 밟을 것이냐, 아니냐는. 묘하게도 두 정권은 뿌리가 같다.

하지만 믿고 싶다. 그리고 기대한다. 새 정부가 현 정부의 언론정책 기조를 반면교사 삼아 수정해나갈 것임을.

지난 연말 공영방송 KBS에선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기이한 현상이 연출됐다. 12월 26일 신임 사장의 부사장 후보 2명 임명 요청을 KBS 이사회가 부결시킨 것이다. 여당 추천 몫 7 대(對) 야당 추천 몫 4로 항시 정권 뜻대로 관철되었던 KBS 이사회가 무려 7명의 반대로 인사 요청을 거부한 것을 정권이양기에 나타난 반짝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여당 추천 몫 이사 중 몇이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았다는 증좌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개인 자질과 행동거지에서 방송사 대표로서의 적절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돼 조직 구성원들에 의해 장기간 파업까지 초래했던 MBC 경영진의 달라진 태도 역시 관심거리다. MBC는 지난해 성탄 전날 긴급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직된 전임 노조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을 지난 1일자로 특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사측 주장대로 이 같은 조치가 “콘텐츠 역량에 집중하고 있는 시점에 화합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단행한 인사인지, 아니면 정권 교체기 보신을 위한 ‘악어의 눈물’인지는 아직 모른다. 나머지 해고자 7명의 복직이 이뤄지고 ‘신천교육대’ 등을 떠도는 파행인사 피해자들이 제자리에 돌아오고, MBC 본사와 지방사의 지분 정리가 납득할 만큼 정비되기까지는.

하지만 최근 관영 매체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변화는 정권의 간섭으로 ‘상식이 실종되는 것’을 수없이 봐온 입장에선 작은 희망을 갖게 한다. 물론 그 희망은 정권이, 정부가 공영 매체를 쥐락펴락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때 현실화된다.

새 정부가 신경 써서 관철해야 할 사안도 있다.
정권 이양과 함께 이월될 것으로 여겨지는 15명의 해직자 복직 문제도 근자의 정황으로 봐선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굳어가고 있다. 일종의 설거지인 셈이지만 새 정부의 언론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 같다.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 대통합’을 기치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극보수 성향’, ‘막말 파동’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에 선임, “대통합 의지가 의문시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부디 ‘소통 불통’의 본격 시동이 아니길 바란다.

현대는 소통의 시대다. 지도자가 진정으로 소통을 원한다면 언론 장악 시도를 포기하고, 언론이 건네는 제언과 쓴소리에 경기(驚氣)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 복지 확대 등 새 정부가 맞닥뜨릴 수다한 정책 과제를 순조롭게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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