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공공저널리즘의 부활을 꿈꾸며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국민의 방송’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민의 방송을 미디어를 장악한 여권에 맞서는 야권의 방송으로 규정짓는 것은 쉽게 단정 지을 문제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야권 방송을 허용한다면 여권 방송의 당위성과 존재도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방송저널리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일이니 그렇다.

이 문제는 여권, 야권 어느 쪽을 토대로 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시녀로 존재하는 저널리즘’과 ‘시민 저널리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몇몇 선진국에서 저널리즘은 시민이 사회 현안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잃은 채 정치적 현실로부터 멀어져가고, 얄팍한 선정성만을 쫓는 시대를 걱정했다.

사람들이 뉴스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법은 무얼까? 뉴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뉴스 시사에 매달리는 시사 마니아로 되찾아 올 방법은 무얼까? 이런 변화가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누가 그 일을 추진할 것인가?

그러나 누구도 답을 찾진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뉴스와 시사로 돌아오지 않았고 공공성과 공익성을 앞세운 공공 저널리즘은 쇠퇴해 갔다. 그런데 방송·신문들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제구실을 못하기에 시민이 신문을 창간하고, 유튜브·팟캐스트로 시민 저널리즘을 전파하고, 아예 방송사를 하나 세우려 나서는 이 나라에서 저널리스트로 존재함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렇게 따지면 시민의 언론, 국민 방송은 사회의 최대 관심사이자 뉴스거리가 되어야 했다. 몇몇의 제안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요구하고 지지성원을 보낸다면 그 주제가 무엇이든 그것은 당연히 빅뉴스이다. 그저 막연한 요구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려 깊고 비범하고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다수 시민의 요구는 그것 자체로 큰 비중을 두어 다룰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자기들 운명과도 관련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미 정치권력과 자본의 손에 자기 운명을 맡겨 놓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류 언론들의 황당하리만치 신중하고 객관적인(?) 이런 태도야말로 시민의 언론, 국민방송을 만들어 공공 저널리즘을 살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 스스로가 문제를 파악하고, 설명하고, 대안을 마련해 추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것이다.

문제는 시민이 그만한 힘과 능력을 지속적으로 모아낼 수 있는가이다. 시민의 힘을 온전히 이끌어내기 위해 먼저 풀어야 할 것 중 하나는 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 전환이다.

우리 사회는 정치와 정치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지만 다소 엉성하다. 정치체제를 비판하면서 그 기준을 이념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보수와 진보, 수구와 혁신, 좌파와 우파… 과연 그럴까?

이제 우리에게 군림하는 정치체제는 더 이상 이념에 의해 구별할 존재가 아닌 듯하다. 정치체제를 판별하는 핵심 기준은 시민을 ‘국가의 소유물’ 내지는 ‘국가의 시종’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양심껏 거부하는가’로 따져야 한다. 어느 정파가 아닌 시민사회의 편이냐 아니냐로 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치권이 이야기하는 화합과 치유를 거부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지금 치유보다 정직하고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일치단결이라고? 어느 편에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것인가? 시민으로서 뭉치고 유권자로서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

이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인지 시민의 봉사자인지 비판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의 언론들이 권력의 시녀인지 우리의 정론인지도 따져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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