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오바마 시대의 신 대북 전략

[스페셜리스트│외교·통일] 이하원 조선일보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 이하원 조선일보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기 행정부에 존 케리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기용키로 한 결정은 한국의 지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의 미국측 주요 인사 기록카드에서 케리 지명자는 지한파(知韓派) 인사로 분류돼 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측과 정부 관계자들은 ‘케리 국무장관’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케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자신이 속한 민주당이 당론으로 반대할 때도 한·미 FTA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한·미 동맹이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국무장관에 취임할 경우 주목되는 것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북정책을 수정할지 여부다. 케리는 그동안 워싱턴 정가(政街)에서는 대표적인 대화파로 분류돼 왔다. 또 최근의 상황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의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한은 한국계 미국인을 억류하며 미국이 대화에 나설 것을 재촉하고 있다.

에반스 리비어 전 주한미대사관 정무공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최고위급 차원의 대화를 통해서 분명한 입장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소수이긴 하나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방북(訪北),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나서 협상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박근혜 당선인 역시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 사실상 중단된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박 당선인은 대선 전에 실시한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사과가 대화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 사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북한과 대화하면서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물론 이런 입장은 천안함 폭침 이후 전면 중단된 남북 교류를 즉각 재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과의 대화채널이 모두 끊겼던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북한과의 대화에 전면 반대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최근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도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이는 실제 정책변화로 연결될 수 있다.

문제는 대화 자체가 목적이 돼 북한 핵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북한이 주도권을 갖는 과거의 경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장거리 로켓 ‘은하 3호’ 발사 성공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사실상 확보했다. 이미 핵무기 4~6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핵물질을 갖고 있다. 또 영변 이외의 지역에서도 핵무기의 원료로 쓰기 위해 우라늄 농축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대화와 협력을 늘리는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야망을 포기시키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지원을 하는 ‘비핵·개방 3000’ 정책을 추진,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려고 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지난 15년간의 정책은 모두 북한이 핵,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추진한 전략이었다. 이 같은 정책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결국 북한에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만 낳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는 북한이 ‘핵+ICBM’을 동시에 갖춘 이상, 이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전제하에 새로운 대북 협상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추가도발을 하지 않는 한, 한·미 양국의 신(新)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대북 대화는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정책이 기반돼야 한다. 단순히 과거처럼 6자회담을 재개하는 형태의 해법은 이제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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