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여, 조직의 구성품이기를 거부하라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연예전문매체 텐아시아의 편집장과 기자들이 집단 사직한다는 소식을 트윗으로 접했다. 다른 연예매체와 뚜렷이 차별되는 내용들이 담겨 종종 들르던 곳…. 꼭 해보고 싶던 문화연예 기자를 여기에서라면 해 볼만 하겠다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도 들었던 곳이다.

낚시질이나 경박한 가십성 기사를 배제하면서도 독자의 만족을 위해 노력한 흔적들을 늘 읽을 수 있었다. 대중문화를 다루면서 경박스런 기사나 찝찝한 성인광고를 걸어놓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런 텐아시아를 아끼는 독자들이 한국 대중문화의 내공증진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기에 아쉬움은 크다.

편집장과 함께 이곳을 떠나는 최 모 기자의 인터뷰는 뭉클했다.
“일을 하면서 저희가 원칙으로 삼았던 것은 쓰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고 대상에 대해서 존중하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연예매체들은 주로 연예인이나 이런 사람들을 대상화시키거나, 흥미 위주의 글을 쓰는 것들이 많았다. 저희는 마음속으로 ‘아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런 트릭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많이 읽을지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말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즉 ‘원형’을 전하고 싶었다.”

저널리즘에 대한 참으로 간결하고 힘 있는 웅변이 아닌가. 보도의 대상을 존중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원형을 전하는 것, 트릭 없이 보도하는 이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 나름 이것을 실천하던 기자들이 현장을 떠난다니 그도 안타깝다.

좋은 저널리즘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품격과 권위, 존재의 목적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확신이 좋은 기사를 만든다. 좋은 기사는 팔리기 위한 내용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일에 대한 정갈한 소개와 설명, 합리적인 관점과 전개, 그 사안의 의미와 대안,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좋은 기자들은 나은 대우에 앞서 이런 기사를 쓸 수 있게 만들어 주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재능 있고 열정 넘치는 기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현장을 떠나게 만들고 있다. 텐아시아 뿐이랴. 지상파 방송에서 잘려 나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떠나는 동료후배들을 지켜보는 것조차도 무기력과 자괴감으로 힘들게 한다.

저널리즘과 이를 수행하는 조직의 목표가 자기 이익과 권력의 수구가 될 때 저널리스트의 용기는 움츠러들고 창의력도 열정도 위축되고 만다. 그 상황에서 쓰여진 기사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기사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내용은 진실에서 멀고, 깊이는 적당히 파다 말고, 방향은 고민 없이 대충 잡아나간 기사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 다음 문제는 그런 기사를 쓰다보면 훌륭한 기사에 대한 욕구, 훌륭한 기사를 위한 끈질긴 취재 즉 기자의 야성(野性)이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보도자료를 맵시 있게 요약하고 브리핑을 간추리는 것에서 끝나고 있는 지는 누구보다 기자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우리 저널리즘은 본질에 다가서야 한다. 본질은 명료하다. 현장에 더 가까이 가고 사건의 주인공을 직접 접촉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본대로 들은 대로 판단한 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추악한 비리나 모순을 폭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도 설명하고 거기에 우리 사회가 뭘 놓치고 있는지도 이야기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라는 ‘대충’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 저널리스트는 조직의 구성품으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시각과 자부심, 가져야 할 만큼의 깊이를 갖고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려면 ‘기자란 누구인가?’, ‘나는 왜 기자가 되려고 했는가? 때때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눈빛으로 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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