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악동들, 잘못된 만남?

[스페셜리스트│국제] 김성진 연합뉴스 기자·국제국


   
 
  ▲ 김성진 연합뉴스 기자  
 
역시 그답다. 북한의 새내기 지도자 김정은 말이다. 그가 미국 프로농구계(NBA)의 ‘악동’ 로드먼을 만났다. 서로 파안대소하는 대화 장면은 물론 포옹까지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국 등 서방 사회는 김정은을 장거리 로켓과 핵을 갖고 불장난을 치는 악동으로 대해 왔다. 그렇다면 악동끼리의 만남이다. 농구 코트에서 로드먼의 일탈 행동은 익숙하다 못해 친근하다. 김정은과 서로 어긋맞긴 목과 손의 문신 자국이 뚜렷하다. 입, 코, 귀의 피어싱도 가관이다. 극은 극과 통한다? 아니면 유유상종인가? 로드먼은 세계 언론에 김정은을 “멋지고 정직한(awesome and honest)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로드먼과 대담한 미국 ABC방송 진행자는 북한의 처참한 인권 문제 등을 내세우며 ‘위험 인물’과의 잘못된 만남 아니었느냐는 식으로 종내 몰아붙였다.

북핵 실험 후 우리 외교부 장관이 유엔 안보리 이사회 의장을 맡아 2월 한달 동안 미국, 일본과 함께 대북 제재의 기세를 올렸지만 한반도에서 추가 사태 악화를 꺼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때문에 한계를 보인 채 의사봉을 3월 의장국인 러시아에 건네줘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드먼이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정은을 만남으로써 자못 엄숙해야 할 국제사회 제재 분위기가 다소 희화화됐다. 악동을 정색으로 꾸짖으면 이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악동도 악동대로 쓸모가 있다. 현대 외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공공외교’(public policy)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화 속에 그 채널이 훨씬 다원화되고 다양화돼 있다. 제재와 맞대응의 국가간(state to state) 대치 상황에서 비국가 주체(non-state actor)가 묘하게 그 판을 비튼다. 물론 북한은 이를 적절히 ‘선전’에 활용하고 미국은 애써 거리를 둔다. 북한 노동신문은 로드먼에 관한 1면 톱 보도에서 김정은이 북미간 체육교류 활성화를 원한다고 했지만 우리의 친한 악동이 전해준 김정은의 속내는 바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 한 통화였다. 콜(Call)! 소위 악동이 왜 말썽을 피우는지 이해해야 한다.

2009년 장거리 로켓 발사는 ‘핵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의 체코 프라하 연설 직전에, 올해 3차 핵실험은 집권 2기 구상을 처음으로 공식화하는 그의 국정연설 전날 이뤄졌다. 이러나저러나 북한의 미국을 향한 ‘날좀 보소’ 구애는 거칠면서 끈질기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대를 이은 대미(對美) 대결전은 사실 생계형 대화 요구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을 제대로 된 대화상대로 인정하기보다는 숟가락을 두드리며 보채는 말썽꾸러기 정도로 대해 왔다. 대신 맹방 이스라엘과 함께 주로 이란을 상대로 외교 자산을 소비해왔다. 최근 3차 핵실험도, 대놓고 핵실험을 할 수 없는 이란의 아웃소싱 정도로 치부하면서 이란 핵 커넥션을 흘리고 있다. 이미 핵실험을 삼세판까지 진행한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북한을 상대로 언제나 진지한 협상과 대화가 이뤄질까.

올해는 정전 60주년이다. 근현대사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전 체제로 이미 기네스북에도 등재돼 있다. 북한은 또 쿠바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제재를 받는 나라다. 쿠바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나무를 때서 굴러가는 목탄차와 대륙간탄도탄이라는 장거리로켓이 시대착오적으로 병존한다. 조그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의 오른쪽 위 귀퉁이가 벌써 세차례의 지하 핵실험으로 들썩들썩했다. 나중에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백두산 호랑이들의 앞마당이었던 개마고원에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방사능 오염 때문에 들어갈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는 생각이 제발 기우이길…. 삼일절께 바라보는 북핵 해결은 ‘일제 군국주의’를 상대로 한 북한의 식민지 배상요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문제가 응축돼 있다. 악동들의 잘못된 만남만을 탓하기는 시대가 너무 긴(緊)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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