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또는 순교' 양자택일 강요당하는 기자들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이쯤되면 겁나서 취재 못하겠다는 푸념이 자연스레 나올 듯하다. 요즘 기자들 얘기다. 최근 들어 형사고소를 당하는 기자들 사례가 유독 많아 졌다. 바로 얼마 전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자신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MBC 관계자의 대화내용을 보도한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달기 의혹 관련 보도를 한 또 다른 기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했다. 모두 특정 신문사 기자들인 점도 흥미롭다. 누군가가 일부러 겨냥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사안은 제 각각 다르다. 정수장학회 건은 타인 대화의 도청을 금지하고 이를 공개하지 말라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느냐가 쟁점이다. 국정원 댓글 건은 개인의 정보를 당사자 동의없이 취득하고 이용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가 문제다. 그리고 김병관 후보자 건은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공직자에 대한 비판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느냐일 것이다.

분류를 하자면 명예훼손 사건은 보도내용의 진위 유무가 핵심이다. 보도내용이 사실인 경우 또는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위법성이 없다고 볼 여지가 있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더라도 보도 내용이 진실하고 공익성이 있다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정수장학회나 국정원 건은 보도내용의 사실여부는 논외다. 보도내용과는 무관하게 정보의 취재방법을 문제삼고 있다. 문제는 통신비밀보호법도, 개인정보보호법도 그 법에서 규정하는 금지행위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고려한 특별한 위법성조각사유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진실이고 공익성이 있는 정보를 보도했다고 해서 통신비밀이나 개인정보를 침해한 행위를 용서한다는 조항은 법전에는 없다.

따라서 ‘통신비밀’ 또는 ‘개인정보’를 침해한 취재보도행위는 법정에서 ‘정당행위’라고 인정받아야 하는 가파른 시험대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시험을 통과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노회찬 전 의원의 삼성 X파일 공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그룹과 공직자인 검사들과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대화내용을 공개하고 보도한 것도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의 입장은 우리와는 다르다. 도청된 내용이 공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공개자가 도청의 불법성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도청자료 취득에 불법성이 없는 경우 도청법은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한 예가 있다.(‘바트니키 대 보퍼 사건’)

결국 지금의 기자들은 공익보도와 위법한 취재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줄타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정수장학회 관련 대화내용을 보도한 기자 사건도 마찬가지다. 끊기지 않은 휴대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대화를 애써 귀 막고 모른 척 하라고 실정법이 요구한다면, 침묵하는 기자와 ‘순교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떠미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현행법과 충돌하는 취재방법에 대해 모두 형사적으로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남용 우려는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깔끔한 해결책은 우선 명예훼손죄의 형사처벌을 폐지하는 것이다. 우리 법제는 사실을 보도해도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적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할 때가 됐다. 명예훼손은 민사적으로도 다툴 수 있다.

덧붙여 취재방법상 법익충돌과 관련해서 해당 법령에 특수한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명예훼손죄에 있어서 공공의 이익, 진실이라는 위법성 조각사유보다는 몇 요소를 추가하여서다. 통신비밀 또는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과 권리남용의 위험성을 감안한 것이다. 일견 위 조건에 더해서 정보취득방법의 상당성 등을 추가하고, 실제 사례에 있어서 엄격히 적용하면 통신비밀보호나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익과 언론의 자유간 이익균형이 맞춰질 듯 싶다. 법원이 현행 법 제도 아래에서 사안에 따라 언론의 자유에 무게중심을 두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개선 방향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요즘의 환경은 기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짐을 지우는 듯하다. 부디 이런 환경에서의 분투를 ‘훈장’으로 여기지도,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자조하지도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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