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스캔들의 비극
[스페셜리스트│문화] 김소영 MBC 기자·문화부
김소영 MBC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3.27 15: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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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영 MBC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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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은 크게 세 토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람이 하루를 아무리 복잡하게 살지라도 3분의 1은 잠을 자고, 3분의 1은 일을 하며, 3분의 1은 생활을 한다. 그런데 잠을 자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먹고 살기 위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방정식으로 치면 고정 상수와 같다. 따라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변수는 나머지 3분의 1인 ‘생활의 영역’이 된다. 이 영역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색깔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연히 달라진다. 어떤 사람을 판단하려면 그가 가진 사회적 위치를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그가 일을 마친 여유로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생활의 영역을 관찰하면 된다.
몇 년 전 나는 노숙자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일을 찾고 저축을 하며 조금씩 자립해가는 현장을 보름에 걸쳐 취재하게 되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비슷한 주제로 취재를 했을 때 서울역에서 인터뷰했던 노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일이 없어서 노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도 싫고, 돈 버는 것도 귀찮고, 쉼터 생활은 답답해서 길바닥에서 산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무엇이 그들에게 변화를 일으켰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놀랍게도 인문학이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노숙자 M은 멀쩡한 회사원이었다가 구조조정을 당한 뒤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도 실패해 졸지에 길바닥 생활을 하게 되었던 사람인데 우연히 대한성공회가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성 프란시스 대학에서 1년 동안 인문학 수업을 받게 되었다.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수업을 계속 받으면서 M씨는 ‘인생은 살긴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술사 수업시간에 교수가 보여준 그림 한 장에 인생이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을 받게 되었으니, 그것은 멕시코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린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수술만 30여 차례, 평생 등을 세워주는 가죽 코르셋을 입고 살아야했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유일한 안식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만 찾아왔다. 그림이야말로 칼로가 ‘저 여기 살아있어요’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말없는 확성기였다. 굵은 일자 눈썹과 정직하게 그린 거뭇한 콧수염도 인상적인데, M은 자화상을 보는 순간 칼로가 캔버스를 뚫고 다가와 ‘이래도 난 살았는데, 너는?’ 하고 묻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을 가르쳤던 교수의 설명을 잊을 수 없다.
“노숙자들이 그러더군요. 우리들끼리 하는 이야기라야 그저 여자 이야기, 술 이야기 밖에 없었다. 지금은 철학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관은 부자들의 놀이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라는 게 다 똑같다는 것,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다 똑같다는 것을 여기에서 확인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고픈 건 배가 아니라 머리이고 가슴이었던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생활의 영역을 낭비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들고 있는 ‘성 접대 스캔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여 그 엄청난 검은 유혹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손쉽게 인맥을 만들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마음이 동해서? 아니면 한번 맛본 금기의 쾌락을 잊지 못해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속아서 이끌렸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쉬운 판단으로?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위를 얻었지만 그들의 성공은 절음발이 성공이었던 것이다. 사적으로 가장 은밀해야 할 것을 온 천하에 들켜 괴로운 그들에게서, 생활의 영역인 3분의 1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사람의 비극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