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저널리즘, 패거리 저널리즘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4.17 15: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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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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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오보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러시아 등에서 잇따랐다. 우리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개성공단 10일까지 전원철수 및 전면 폐쇄 전망’이라는 오보를 시작으로 ‘대북 정보감시태세 워치콘 2단계로 격상’ 역시 때늦은 오보였다고 지적받았다. 지하벙커(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 들어가지도 않은 대통령을 드나들었다고 보도한 기사도 있었다.
북한과 관련된 언론의 오보나 왜곡, 오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필요하게 긴장을 높이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대북 여론을 편향되게 만들고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의 합리적 수립과 시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북한의 동향 그리고 남북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가 냉전 저널리즘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취재 접근이 어렵고 내부 메커니즘과 동향을 모르기 때문에 북한의 선전·선동, 외신의 오보에 쉽게 흔들려 받아쓰기 수준에 머무는 것이 문제이다. 당연히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전망과 예측도 빗나가기 일쑤이다.
2.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보가 아닌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성 오보도 역시 정보 부족에서 온다. 어차피 틀린다 해도 당장 확인되지 않고 비난과 책임에서 멀리 있으니 오보나 왜곡이 쉽게 등장한다.
3. 우리사회 내부의 극한적인 이념 갈등으로 북한 동향에 대한 희망사항과 객관적 전망이 마구 뒤섞여 버리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북한의 디도스 공격이면 기사가 딱 떨어지겠는데…’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이미 사안을 객관적으로 대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에다 언론사가 갖고 있는 정치적 편향성에 의해 ‘보수 진영 망신 좀 당했으면’, ‘진보 진영이 완전히 꺾였으면’하는 식의 편견이 작용하면 오보로 가는 지름길이 놓이는 셈이다.
4. 정치인이나 기관이 고의로 언론플레이를 펼치는 것임을 알고도 감지덕지 받아쓰는 행태도 오보를 양산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냉전 저널리즘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오보를 줄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북한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하게 술술 털어놓는 책임자는 없다. 정부 당국과 정보기관, 학계, 외신을 모두 취재해 정보의 퍼즐조각을 맞추고 판단해야한다.
2. 북한과 관련된 연구 자료를 정기적으로 접하고, 북한의 최근 정보들을 학계나 탈북새터민 단체 등을 통해 꾸준히 습득해야 한다.
3. 북한과 관련해 저지른 판단 실수와 오보는 반드시 기록하고 오판한 원인을 분석해 정리한 뒤 매뉴얼로 공유하자.
4. 북한 문제는 사안에 대한 단순한 취재에 멈추지 말고 현대사 속에서의 흐름을 살피고, 세계 각국의 외교정치와 연계해 편견 없이 판단해야 한다.
이유도 해법도 정리해 놓고 보면 상식적인 문제다. 그런데 왜 이리 냉전 저널리즘의 극복이 어려운걸까? 기사의 헤드라인이 요란하고 당국자들을 만나 따져 묻는 질문이 때로 날카로워도 읽어보면 기사는 별 것도 없거나 잠시 후면 턱없이 빗나간 예측으로 확인된다. 반복되는 답답한 냉전저널리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미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패거리 저널리즘(pack journalism)이란 카르텔로 굳어져 있다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북한이란 폐쇄적인 집단, 철저히 통제된 정부당국과 정보기관을 제한적으로 접촉하며 취재하는 언론으로서는 굳이 협력하지 않아도 똑같은 루트를 통해 보도하게 된다. 뻔한 루트에서 벗어나 진실에 접근할 취재 기자나 데스크는 시간의 압박 속에서 깊이 있는 단독 기사를 욕심내지 않는다. 깊이 있고 다양한 시각의 분석으로 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기사의 내용과 시각은 대충 규격에 맞추고 다만 누가 먼저냐는 속보 경쟁만 벌일 뿐이다. 늘 그래왔고 어느 언론사든 그리하는 이 카르텔 속에 들어가면 적당히 편해진다. 다들 가는대로 함께 흘러가는 것이 안전하고 자기합리화도 편하다. 이 나라의 저널리즘은 이렇게 닫힌 정보원과 열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패거리 저널리즘이 만든 냉전의 틀 속에서 질식해가고 있다. 그리고 평화통일의 비전 및 민주주의 역시 여기에 묶여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