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머리를 흔든다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 김준현 변호사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오래된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에서 미디어 전문가 ‘브린’ 역할을 한 로버트 드 니로의 대사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의 ‘왝 더 독’ 현상은 주객이 전도되어 꼬리가 몸통 역할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는 주식시장에서 파생물격인 선물시장이 몸통인 현물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영화는 주식시장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선거가 배경이다. 재선을 준비하는 현직 대통령이 성추문에 휩싸인다. 여론 향배를 바꾸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급히 호출된 미디어 전문가인 로버트 드 니로는 전쟁 시나리오를 창출한다. 주어진 각본에 따라 미디어는 전쟁영웅을 만들어 내고 여론은 급반전된다. 유권자는 전쟁 뉴스에 빠져들고 애국심과 강한 미국에 대한 열망에 불타오른다. 성추문은 사라지고 그들은 재선에 성공한다. 코미디라고 보기에는 서글픈 여론조작의 폐해를 담고 있는 영화다.

댓글달기 의혹에서 시작된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사건은 오래 전 본 영화 ‘왝더독’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은 우리가 극장에서 블랙코미디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정보원의 댓글달기는 그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종북세력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일상적인 정보수집활동이라는 국정원의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그동안의 말바꾸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댓글달기 자체를 부인했다. 이제는 일상적인 인터넷 종북활동 감시라고 한다. 종북활동 감시가 댓글을 달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것이라면 정말 국정원도 국민의 세금이 아까운 조직이다. 댓글달기를 일상적인 대북 심리전, 정보수집활동이라고 인식하는 그 수준이 저열하기도 하고 두렵기까지 한다. 이것은 일상적으로 국민들의 성향을 사찰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야당이나 시민사회에서 이를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불행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4대 원칙은 ‘보통선거, 평등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이다. 또한 선거관리의 제1원칙이 공정선거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평등선거는 1인 1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권자이든, 후보자이든 선거절차에서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헌법에서 ‘선거운동에서 균등한 기회 보장’을 명시하는 이유도 이래서다. 균등한 기회의 보장과 공정선거를 위해서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금지가 필수다. 헌법 역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말하고 있다. 월등한 조직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선거원칙을 파괴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정선거는 사라지고 관권선거가 남게 된다. 부끄러운 과거역사는 이를 확인하고 있다. 직접적인 폭행과 부정행위로 얼룩진 부정선거의 역사를. 대리투표, 공개투표, 관권 동원 등 행위 말이다. 국정원의 여론조작도 이런 점에서 다를 바 없다.

국가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에 나서고, 이에 대한 수사마저 무마하고자 압력을 가했다면 여당의 편협된 시각처럼 단순한 정치공세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독단적 행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합리적인 의심도 존재한다. 그가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등 정책현안에 대하여 대통령과 정부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라”고 지시했다는 자료도 있다. 국정원이 국정홍보의 역할까지 맡았다는 얘기인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국가정보원법 상 조직의 직무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공직선거법 위반(선거 개입)은 아니고 국가정보원법 위반(직원의 정치 관여금지)에 불과하다는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물음표를 다는 까닭이다. 선거개입의 목적없이 국정원 직원이 단순히 댓글달기를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제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여부에 대한 수사는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 직전 경찰의 무혐의 발표 이후 언론은 진실을 파헤치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지금도 대선 결과에 대한 불만세력의 정치공세로 치부하는 일부 언론도 보인다. 영화 속에서 미디어는 헐리우드의 유명한 제작자인 모스(더스틴 호프만)가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전쟁 영상을 내보내는 것에 만족한다. 철저한 검증보다는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화려한 시나리오에만 관심을 둔다. 그것이 쉽고 편한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행태다.

국정원은 여론조작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선거의 원칙을 무너뜨렸다. 여론을 조작하여 공정선거라는 몸통을 흔들어 댔다. 왜곡된 ‘왝더독’ 현상을 지금이라도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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