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보다 기자가 브랜드다

[언론다시보기] 이지선 ㈜미디어유 대표


   
 
  ▲ 이지선 ㈜미디어유 대표  
 
얼마 전 재미있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의 신생 인터넷 신문인 ‘De Nieuwe Pers(DNP, The New Press)’가 콘텐츠 유료화를 하면서 개별 기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소식이다. 모바일앱을 통해서 월 1.79 유로(약 2550원)를 내면 원하는 기자의 글을 구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제까지 유료화를 추진했던 언론사들은 모두 매체단위로 구독하는 모델이었다. 매체의 명성과 신뢰도를 내세우는 대신 기자 개개인을 브랜드로 구독 모델을 설계한 것이 신선하다.

이 회사의 CEO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별 기자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그들의 팬들과 소통을 하는 시대에는 갈수록 매체 자체의 브랜드보다는 개인의 브랜드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런 현상을 매체의 유료화에 적용해보고 싶었다”며 기자 개인 구독 서비스의 배경을 설명했다.

아직 이 서비스는 성공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회사에서 구독료 수입의 75%를 기자들에게 배분하기로 결정하자 회사에는 기자들과 저자들의 문의가 몰려 들고 있다고 한다. 뭔가 이제까지의 ‘매체-기자’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구조의 한 단면을 볼 수가 있어서 더욱 DNP의 시도가 흥미롭다.

네덜란드 신생 매체의 시도를 그저 먼나라 얘기려니 하고 넘길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언론사들도 끊임없이 콘텐츠 유료화를 고민하고 시도하고 있고, 그러나 별 뾰족한 수가 없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우리는 DNP의 재미있는 시도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이 모델은 언론 콘텐츠 유료화 전략의 한 가능성을 던져 준다. 우리나라의 미디어들은 인터넷 시대의 여명기부터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털 서비스에 콘텐츠 이용료를 받고 기사를 제공했다. 덕분에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기사’는 밥 한끼 가격의 구독료조차도 필요 없이 무제한 리필되는 콘텐츠로 인식이 굳어졌다. 그나마 해당 기사로 몰리는 트래픽도 포털에 유리한 구조여서 광고 수익도 제한적인 어려운 현실이 됐다.

기자 개인의 글을 구독하는 독특한 방식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첫 단추를 잘못 꿴 언론사의 유료화 전략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어떤 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기자 개인의 브랜딩 모델이 언론의 질적 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들 중에는 충분히 취재도 하지 않은 채 보도자료에 의존해 작성됐거나 그나마 여기 저기 다른 매체의 글을 짜깁기해서 제목으로 낚시하는 기사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기자 개인의 이름을 걸고 기사(콘텐츠)가 사고 팔리는 시대가 된다면 적어도 이름에 부끄러운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다.

언론사에서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깊이 있고 전문성 있는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좀 더 고민하고, 독자의 눈높이에서 좀 더 깊이 취재해서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기자 개인 브랜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다. 언젠가 “왜 우리나라의 기자들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와 같은 명저를 남기지 못하냐”고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마디 던졌다가 몰아치는 반론에 파묻혔던 경험이 있다. 우리의 언론 환경은 미국 기자들처럼 한 부문에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경력을 쌓으면 일반 기업에서처럼 관리자로 역할이 바뀌어 버리는 것도 오래도록 기사로 승부하는 기자를 길러내지 못하게 한다. 한때 종군기자로 명성을 날렸던 사람도, 젊은 날에는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민완기자로 인정받던 사람도 언론사 간부가 되면 기자로서의 빛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언론이 어떤 방향이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면, 그 첫걸음은 언론사의 가장 근간이 되고 기본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시각’이고 ‘기사’이고 ‘기자’일 것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