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보도 논란, 자가당착과 이중잣대
[언론다시보기] 이희정 한국일보 선임기자
이희정 한국일보 선임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5.15 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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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정 한국일보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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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업계에 ‘유사(類似) 보도’ 논란이 한창이다. SNS 저널리즘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뉴스와 보도에 관한 통념이 급변하고 있는 마당에 ‘정통(혹은 적법) 보도’가 따로 있다고 전제한 ‘유사 보도’란 말 자체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현행 방송법은 허가·승인을 받은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에 대해서만 보도를 허용하고 있다. 유사 보도란 그 외 방송사업자, 즉 보도를 할 자격이 없는 일반 PP들이 보도와 다름없는 내용을 교양이나 오락 프로그램으로 포장해 방송하는 것을 일컫는다.
유사 보도를 둘러싼 방송사업자들 간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도전문채널인 YTN과 뉴스Y, 옛 MBN은 경제정보·증권방송을 표방한 한국경제TV, MTN, 이데일리TV 등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 왔다. 종편이 등장하고는 tvN 등 CJ계열 채널들이 공격의 표적이 됐고, 새 정부 출범 이후 방송 관련 정책·규제 권한을 어설프게 나눠 갖게 된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의 기싸움까지 얽히면서 사안이 더 복잡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 프로그램이 보도냐, 아니냐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방송법에선 ‘국내외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전반에 관하여 시사적인 취재보도·논평 또는 해설 등의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법령 위반 여부를 따지는 잣대로는 너무 모호하다. “정보 제공 목적의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우기면 문제 삼기가 어렵고, 실제로 사업자들은 그런 방식으로 제재를 무력화시켜 왔다.
이 해묵은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종편 TV조선의 모회사 조선일보다. 이 신문은 지난 10일자 6면 전체를 털어 PP들이 유사 보도를 일삼는데 방통위나 미래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방통위는 바로 ‘유사 보도에 대한 실태조사’를 추진한다고 밝혔고, 관련 매체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이 와중에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에서 MBC 앵커 출신 최일구씨가 진행하는 뉴스 형식의 코너 ‘위크앤드 업데이트’가 유사 보도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황당한 코미디까지 벌어졌다.
명쾌한 해법을 제시할 능력도 없는 처지에 밥그릇 걸린 사생결단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다만 자가당착에 빠진 조선일보와 방통위의 행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서 좀 심하게 말하면 편집국 간부나 기자들이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했다. 이들이 목청 높여 비판한 유사 보도 행태가 이 신문이 종편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케이블 채널 ‘비즈니스앤’을 통해 했던 것들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 채널은 ‘조선일보 투데이’이란 이름으로 신문의 주요 기사를 줄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매일 방송했다. 조선일보는 또 2005년 자사 기자들이 제작한 뉴스 프로그램 ‘갈아만든 이슈’를 시민방송 RTV를 통해 방송하기도 했다. 비즈니스앤은 요즘도 ‘최·박의 시사토크 판’ 등 TV조선의 간판 프로그램을 받아 내보내고 있는데, TV조선의 자체분류에 따르면 이들은 ‘교양’이 아닌 ‘시사’ 프로그램이다. tvN의 ‘백지연의 끝장 토론’과 ‘쿨까당’이 문제라면, 이들 프로그램 역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려다 더 큰 논란을 부른 방통위의 어설픈 대응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방통위 담당과장은 “방송과 모바일, 향후 스마트TV까지 연계한 프로그램 유통 표준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그 일환으로 프로그램 분류 세부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실태조사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방통위가 10일 보도자료를 내면서 ‘실태조사 결과 금지사항을 위반한 사업자에 대해서는 법령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게 문제인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법적 조치를 한다는 걸까. 결국 방통위는 종편과 모회사 신문들의 압력에 떠밀려 그들이 지목한 특정 채널, 특정 프로그램을 표적 단속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자초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일수록 시일이 걸리더라도 차분한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중잣대와 여론몰이, 어설픈 대응은 문제를 더 꼬이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