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협력을 통한 경쟁
[언론다시보기]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5.22 15: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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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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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가 서로의 사설을 비교하고 비평하는 지면을 기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매주 한 차례 하나의 사안에 대해 서로의 사설을 비교해서 입장이 다를 경우 배경과 논점을 짚어내는 기사를 게재한다는 것이다.
필진은 자사 기자들이 아닌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새로운 실험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서로의 논지가 희석되어 애매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서로에게 적이었던 신문사들이 협력을 통해 경쟁한다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소식이다.
국내 언론에서 국내 타 신문사의 새로운 실험을 알리는 기사를 본 게 얼마만인가. 아니 있기는 있었던가. 이런저런 이유로 타 신문사의 기사에 대해 비방하거나 고소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전부 아니었던가싶다.
반면 해외 미디어 기업의 새로운 실험과 성공사례는 국내 언론사들이 경쟁하듯 서로의 지면에 소개해왔다. 해외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례가 있다면 독자들에게도 알리고 우리 언론사들도 적극적으로 도입을 고려해봄직하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들이 국내 실정에 맞게 얼마나 심도깊게 논의되고 채택되어 실행되었는가에 있다. 선진적인 제도라고 소개된 외국의 정책들은 입안자들의 정치논리나 이해관계에 휘말려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다. 미디어기업의 전략 역시 일회성 기사에서 단순한 소개로 그칠 뿐, 어느 언론사도 제대로 실행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별다른 차별성도 없고 우리 현실에 잘 맞지도 않는 해외사례에 높은 가치를 두고 끊임없이 찾아 소개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해외 미디어 기업들의 사례보다는 실패하더라도 우리 언론사들의 실험과 협력 사례를 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해외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부분을 찾는다면 그것은 적과의 동침이 아닐까한다.
미국의 경우 신문산업 내 거대 기업들은 공동투자하여 웹 벤처기업들을 인수하거나 다양한 조인트벤처를 설립해왔다. 예를 들어 가네트, 트리뷴, 맥클래치는 공동투자로 취업경력 사이트를 운영한다. 여기에는 140개 이상의 신문사들과 주요 포털들이 제휴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상품이나 브랜드별로 가까운 거리에서 가게를 찾아주는 로컬쇼핑 서비스도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0년에는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USA투데이가 각각 4백만달러씩 투자하여 공동뉴스포털을 출범시켰고, 다음 해에는 광고없는 유료서비스 모델을 도입하기도 했다.
신문 왕국 일본 역시 신문사들간의 협력사업이 활발하다. 과거부터 이루어져온 배송과 인쇄에서의 협력은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의 3대 일간지-요미우리, 아사히, 니혼게이자이는 이미 2008년에 연합하여 공동 뉴스사이트 아라타니스를 시작했다. 당시 3개사의 임원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들은 이야기는 아라타니스의 가시적인 성과와 무관하게 2013년 현재의 우리 신문사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3사는 라이벌이었고 여전히 라이벌로서 기사로 경쟁하지만 가능한 부분에서는 협력을 하려고 한다. 금전적인 이득을 얻지 못하더라도 상호간에 소통이 크게 개선되어 지속적으로 협력 사업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적과의 동침이 편안한 아침을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사실 해외에서의 신문사간 협력 시도가 재정적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전략 역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이 다른 현실에서 그대로 도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끊임없이 실험하고 혁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사들도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지만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실험이 남아 있다.
바로 협력을 통한 경쟁이다. 위기에 처한 신문산업에서 한 기업의 열 걸음 보다는 열 기업이 같이 내딛는 한 걸음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진부가 경구가 왠지 새롭게 들린다.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가 시도하는 실험과 같이 보다 많은 적과의 동침 소식을 접해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