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기자 비슷한' 사람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7.03 15: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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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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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인간(人間), 그리고 인간의 정황(情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간을 지향하는 것과 뉴스가 인간 개개인에게 함몰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뉴스 가치가 있는 사안이라면 거기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고 사회구조에 따른 맥락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뉴스는 배경과 맥락은 외면하고 표면에 덧칠해진 개인의 영욕에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에서 눈을 돌려 정치인들에게 몰입하는 것이다. 권력을 쥐려는 의도가 있고 과정이 있고 결과와 미래가 있을 것인데 언론은 거기 얽혀들어 싸우는 인물들을 쫓기에만 바쁘다. 선거 국면에서 나타나는 경마식 보도는 가장 극명한 예이다. 누가 이기느냐에 매달려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 텃밭, 약세지역, 학연·혈연에 얽힌 지지구도 분석에 열을 올린다.
지금 국정원 대선 개입 보도에서 드러나는 것도 비슷한 양태이다. 국정원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그 의도와 기획과정, 전개과정,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 진상 조사와 진실 규명, 조사 결과에 따른 합당한 처리가 언론이 주목하고 추적해 밝혀낼 사안들이다. 그러나 언론은 여당과 야당 사람들이 입씨름하는 것만을 중계할 뿐 더 나아가지 않는다. 제목으로 ‘팽팽한 신경전’이라 걸어 놓았지 내용은 지금껏 별 게 없이 느슨하다. 양측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자극적인 언사로 양측의 싸움을 격렬하게 만들었으니 언론은 자신이 할 바를 다한 것일까? 보다 못해 시국선언이 국내외에서 터져 나오고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시위 행렬을 이루는데 그것은 또 외면해 버린다. 정치인 한 명 한 명의 입은 주목하면서 다수 시민의 물결은 회피해버리는 행태를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NLL 문제도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맥락에서 이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것인지 언론 보도로는 알 길이 없다. 세상을 떠나버린 남북 지도자 사이에 오고 간 회담의 내용을 정치인 개인의 입을 빌려 막연히 보도하고, 이 문제가 왜 불거져 이토록 소란스러운 것인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 것인지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지도 모른 채 증인 채택, 조사 범위, 위원회 구성이 쟁점이라고 연일 입씨름만 중계되고 있다.
대통령의 중국 방문보도는 대통령의 한복 패션과 중국어 실력을 칭찬하느라 법석을 피웠다. 귀한 손님이라 하늘에서 상서로운 천둥번개를 내렸다고 은근슬쩍 아첨을 떠는 취재칼럼도 있다. 국빈방문을 국가원수가 국가원수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귀하신 분이 중국에 간 개인적 뉴스로 격하시킨 것이다.
‘뉴스의 개인화’와 ‘개인의 뉴스화’는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국정원 사건을 전직 국정원장의 문제로 다루는 것과 국정원 및 국정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의 문제로 다루는 것의 차이이다.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를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가 국기를 흔든 국정원의 선거음모를 파헤치는 조사로 보느냐, 아니면 여야 간의 힘겨루기에서 불거진 정쟁의 산물로 보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다.
‘뉴스의 개인화’는 독자와 시청취자들이 해당 뉴스가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삶과 행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 올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여 궁리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드는 뉴스로 전하는 것이다.
반면 ‘개인의 뉴스화’는 독자와 시청취자를 구경꾼으로 만드는 데서 그친다. 맥락을 읽어내고 힘들게 분석하기보다 그대로 옮겨 적고 즐겁게 묘사할 테니 편히 감상이나 하라고 던져 주는 뉴스이다. ‘개인의 뉴스화’는 취재도 쉽다. 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다. 탈도 나지 않는다. 이것이 언론이 ‘개인의 뉴스화’에 안주하는 이유라고 하면 거짓일까?
국민 다수가 정치인들의 말다툼이나 옮길 그런 사안이 아니라고 언론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지금조차도 언론은 그 안락함에서 빠져 나올 줄을 모른다. 이런 연유로 우리 언론이 전하는 걸 사람들은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 적당히 섞인 것(Truthiness)’이라 여긴다. 국민이 우리가 전하는 것을 진실이 아니라 진실 비슷한 것이라 꿰뚫어 본다면 우리는 기자가 아니라 기자 비슷한 사람이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