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필법'(春秋筆法)의 정신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김준현 변호사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7.17 15:23:49
|
|
|
|
|
▲ 김준현 변호사 |
|
|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관우는 모택동만큼이나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신격화돼 곳곳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을 정도다. 중국 민중들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야 여러가지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미화됐듯이 의리와 충성의 아이콘이라는 점 때문일 수도 있고, 무장으로서의 영웅적 기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관우는 무장이면서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라는 역사해설서를 전쟁터에서도 손에 놓지 않은 문무겸비의 인물로 묘사된다.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관우의 사람 됨됨이에 더욱 빠져든다. 춘추는 알려졌다시피 공자가 편전한 중국역사서가 아닌가. 문체는 간결하되 사실을 준엄하게 기록해 대의명분을 밝힌다는 정신으로 역사적 사실을 가을서릿발처럼 엄격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춘추필법’이라는 말도 이래서 나왔다. 사관들은 춘추필법을 역사 기록의 본보기로 삼았으며, 관우가 춘추좌씨전을 탐독한 것 역시 스스로 대의명분을 지키고자 하는 다짐에서였을 것이다.
춘추필법은 역사기록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언론계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해야 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 공익을 대변하며, 취재·보도·논평 등을 통해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법조문에서 규정된 언론의 사명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실을 기록하고 진실을 알리는 것이 언론이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위태로운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춘추필법은 언론종사자에게도 역시 절대명제이다.
하지만 지금 춘추필법의 정신은 역사책에 기록된, 아니면 언론사 사장실이나 편집국 벽면에 걸린 ‘액자’속에서만 존재하는 빛바랜 문구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사상초유로 편집국을 봉쇄해 기자를 거리로 내쫓았다. 사주의 경영방침에 반대한다는 이유다. 춘추필법의 정신, 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자세를 사시로 하는 한국일보에서 자행된 일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춘추필법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곳은 한국일보만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이후 언론의 모습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지난달 20일 YTN은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글 등 2만건 포착’이란 제목의 단독보도를 내보냈다. YTN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삭제된 국정원 SNS 의심계정 일부를 복원한 결과 트윗글과 인용글 대부분이 박원순 시장과 무상보육 정책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뉴스는 3시간 동안 4회 방송된 이후 갑자기 중단됐다. YTN노조 측 주장에 의하면 국정원 직원이 해당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자연 취재기자 외에도 편성을 담당하는 편집국 데스크까지 방송과 관련한 국정원의 입장이 전달됐을 거란 의혹이 생긴다. 만약 국정원의 요구에 방송이 중단됐다면 이것은 80년대 전두환 신군부의 ‘보도지침’과 다를 바 없는 형태다.
MBC는 시청자에게 예고까지 했던 ‘시사매거진 2580-국정원에 무슨 일이?’를 끝내 불방시켰다. 공영방송이라는 KBS도 마찬가지다. KBS 뉴스9의 옴부즈맨들이 ‘국정원 관련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TV비평 시청자데스크’의 담당 국장과 부장을 보직해임하기까지 했다. 공영방송이라면서 국민들에게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는 방송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 이후 촛불집회에 대한 언론의 보도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해외 동포들마저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메이저 신문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기록하지 않고 있다.
춘추필법의 정신은 정치권력의 통제로부터의 독립, 사주나 광고주의 금권에서의 자유, 그리고 기자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완성됨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한국일보 사태에서 기자정신이 사주의 횡포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이후 언론의 보도행태에서 정치권력의 통제를 받고 있는 언론의 자화상을 보고 있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느냐가 중요하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추어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이런 정신이 불타오르는 언론은 정말 요원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