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다시 첫발을 뗀다
[언론다시보기] 이희정 한국일보 선임기자
이희정 한국일보 선임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8.14 17: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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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정 한국일보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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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2일 새벽. 선잠을 깨자마자 대문 앞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정신. 정정당당(正正堂堂)한 보도,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자세’. 1면 머리를 차지한 한국일보 사시(社是), 그 아래 ‘언론의 바른 길,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란 글귀가 또렷하다. 이제 ‘짝퉁의 악몽’이 끝난 것인가, 아직 실감이 가지 않는다.
이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않겠다며 책상 한 켠에 차곡차곡 모아두다 치미는 욕지기를 더는 참지 못해 쌓기를 포기했던 ‘쓰레기 종이뭉치’ 위에,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온전한 신문 한 부를 꾹 눌러 얹는다. 6월 15일 용역이 점령한 편집국에서 내쫓기고 기사집배신 시스템의 아이디마저 박탈당한 지 58일 만이다. 10여 년 간 참고 덮어 온 사주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한 뒤 보복 인사가 자행된 5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00여일. 그 힘겨운 싸움 끝에 바이라인을 되찾은 기자들, 어깨 겯고 함께 싸웠던 조판팀, 행정팀 동료들까지 190여명이 다시 첫발을 디디며 신문에 새긴 다짐의 글들을 한 줄 한 줄 다시 읽는다.
쏟아지는 축하와 격려의 전화, 문자들을 받으며 심장이 뜨거워질 만도 한데, 외려 묵직한 돌덩이를 매단 듯 마음이 무겁다. 한국일보가 이제 겨우 신문의 꼴을 갖춰 낼 수 있게 됐을 뿐, 파탄지경에 이른 경영을 쇄신하고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난관이 많은 탓만은 아니다. 한국일보를 떠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돌아보면, 지금 이 땅의 언론, 그리고 기자들이 온통 어둠과 농무에 싸인, 좌표를 가늠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을 마냥 맴돌며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막막함과 두려움 탓이다.
지난 100여 일간 우리는 사유물로 전락한 신문이 얼마나 하찮아질 수 있는지 보았고, 그러기에 신문을 신문답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또 힘든 일인지 알았다. 영혼을 잃은 기자가 얼마나 비루해질 수 있는지 목도했고, 그러기에 어엿한 기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막중하고 또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누군가의 귀를 열어 우리의 목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절감했고, 그러기에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숱한 약자들의 설움이 얼마나 깊었을지 돌아보게 됐다. 26개 언론사 막내 기자들을 비롯한 많은 동료들의 뜨거운 연대에 감격했고, 그러기에 “존경하는 모든 선배기자들이 눈앞에 엄존하는 언론 탄압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 것을 촉구”한 막내 기자들의 간절한 호소가 무관심과 냉소의 벽에 부딪쳐 더 크게 메아리치지 못하고 만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로비 바닥과 거리에서, 닫힌 편집국으로 이어지는 좁은 비상통로에서, 폭염과 지루한 장마를 견디며 그렇게 보고 겪고 느낀 모든 것들이, 처참하게 무너졌던 한국일보를 다시 세우는 지난한 여정에서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자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신문 정상화를 위한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을 무렵, 워싱턴포스트가 옛 명성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헐값에 아마존닷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에게 팔렸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나의 눈길을 잡은 것은 퓰리처상을 두 차례 수상한 베테랑 기자 진 웨인가튼이 베조스에게 보낸 공개서한이었다. 그는 새 사주에게 워싱턴포스트의 명 편집국장이었던 고(故) 하워드 시몬스가 신문사 간부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원칙이자 사주 그레이엄 가의 사람들이 탁월한 본을 보여줬던 경구를 소개했다. “Kick up, kiss down.” 윗사람에게는 굴종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가혹한 인물을 일컫는 ‘Kiss up, kick down’을 뒤집어 표현한 이 말이 어디 간부와 사주만의 덕목일까.
비리 사주의 전횡과 폭거에 맞서 싸우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뜨거워졌고, 냉철해졌다.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안다. 믿음과 각오만으로 헤쳐가기에 세상은 너무 울퉁불퉁하고, 냉혹하고, 험난하다. 그러니 빛 바랜 초심을 되새기며 힘차게 나가겠다고, 주먹 불끈 쥐며 말하지는 못하겠다. 되찾은 신문 첫 호에 새긴 다짐의 글에서 나는, 다만, 이렇게 적었다. ‘한국일보 기자인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다시, 첫발을 뗍니다.’ 다시 보니 한국일보란 말은 없어도 좋겠다. 아니 없어야 맞겠다. 기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조용히 읊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