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편작'의 한 수

[언론다시보기]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


   
 
  ▲ 정재민 교수  
 
워싱턴 포스트가 팔렸다. 팔렸다고 쓰고 보니 왠지 처참한 느낌이다.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회자되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신문사라 그런지 당혹감도 처절함도 더 하다. 가격은 2억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치면 2800억원 쯤 된다. 큰 돈이긴 하지만 다른 기업의 매각 금액과 비교해보면 씁쓸하다. 사진공유 사이트 인스타그램을 사기 위해 페이스북이 지급한 돈은 10억 달러(1조1000억원), 야후가 마이크로블로깅 사이트인 텀블러를 인수한 것도 11억 달러(1조2000억원), 아마존이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를 산 것도 12억 달러(1조3000억원)다. 이런 거래에는 열광하던 월가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매각은 두 배 이상 부풀려진 가격이라고 혹평했다. 그렇다면 워싱턴 포스트를 산 바보는 누구인가?

워싱턴 포스트를 사들인 것은 인터넷 상거래 업체 아마존이다. 아니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제프 베조스 개인이다.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 포스트 회장은 “너무나 가슴아프지만 인수자가 제프 베조스이기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매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베조스가 과감한 수혈과 혁신적 치료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친다.

제프 베조스는 누구인가? 49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선정한 스티브 잡스 이후 주목해야할 경영인 1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최우등 졸업생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트위터의 비즈 스톤 등이 모두 대학 중퇴자임을 상기해보면 정규 교육을 끝까지 마친 모범생이다. 대학 졸업 후 이력도 화려하다. 월가에서 주식 트레이딩 전산 업무를 담당하며 승승장구한다. 나이 서른에 연봉이 100만 달러로 알려졌다. 그가 돌연 월가를 떠난다. 1994년 인터넷 이용량이 전 해에 비해 폭증하는 걸 보고 인터넷 커머스 사업을 기획한다. 차고로 들어간 그는 다음 해 온라인 서적판매업체 아마존을 들고 나왔다. 그 이후 아마존의 성공은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한 둘이 아니다. 2000년에 블루 오리진이라는 우주선 개발 기업을 설립했다. 2006년에는 우주선을 발사할 공간과 장비까지 샀다. 아폴로 11호의 엔진을 복원하겠노라고 대서양을 뒤져서 인양해냈다. 다섯 살 때 TV로 아폴로 11호의 발사를 보며 꿈을 키웠다는 그는 우리 자녀들에게 우주를 향한 더 큰 꿈을 안겨주고 싶다고 했다. 1만년 동안 멈추지 않는 대형시계를 제작하는 재단에도 큰 돈을 내놓았다. 깊게 사고하고 멀리 보는 중요함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협업과 공유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숙박이나 자동차 공유 사이트에도 투자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지만 베조스는 이미 물건을 사고 책을 읽는 방식에서 우리의 삶에 혁명을 일으켰다. 탁월한 경영인으로 베조스의 명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베조스의 손에 들어간 워싱턴 포스트는 어떻게 될까?

베조스에게 인수된 워싱턴 포스트는 주주에게 분기별 실적 보고를 할 필요가 없다. 투자자의 단기 이윤 추구 압력에 시달리지 않고 신문에 대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베조스의 철학 중 하나는 모든 사업은 5년 이상의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실험과 도전으로 워싱턴 포스트를 살려낼지 자못 궁금하다. 온라인 구독 확대, 지불방법의 혁신, 전자책과의 결합판매와 같은 유통의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상품을 만들고 팔리기를 기대한다면 베조스 아니라 그보다 더한 디지털의 ‘편작’(중국 전국시대의 명의)이 손을 대더라도 살릴 수 없다. 사람들이 신문에서 원하는 것은 유통 방식의 다변화가 아니라 질높고 차별화된 ‘콘텐츠’일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유통의 귀재가 아날로그 신문 ‘콘텐츠’에 불어넣을 신의 한 수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국내 신문사들도 새로운 유통 방식과 유료화 정책만을 고민할 게 아니라 기사 차별화의 실험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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