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실에서 너무 멀리 왔다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오늘 우리의 저널리즘은 객관성의 상실, 편파성, 불공정, 사실의 왜곡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비판 받는다. 우리가 저널리즘에서 우선적 가치로 여겼던 것은 아마 객관성의 준수일 것이다. 객관성을 빌미로 시대적 사명을 다하지 않는 저널리즘의 문제는 이미 제기한 바도 있어 생략한다.

그렇다면 그 객관성은 제대로 확보되고 있는가. 어떤 사건과 현안을 취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념적 가치판단이 개입된 것일 수도 있고, 모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힘들고, 수집한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도 곤란하다. 누가 읽고 들어도 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 뉴스보도가 정말 어려운 작업임을 취재현장의 기자들은 절감할 것이다.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처럼 진실이 숨겨진 채 여야가 공방을 벌이며 다툴 때, 시민이 촛불을 켜들고 광장을 메우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도 한쪽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 한정된 국가재원을 놓고 ‘기업을 살리자’와 ‘복지를 키우자’로 맞설 때 등등 여러 상황에서 기자의 객관성 확보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우리는 슬그머니 목표를 낮춰 잡아 왔다. 객관성을 성취하는 건 어려우나 ‘정확하게는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분석과 판단, 해결책과 대안의 제시는 자칫 주관이 개입될 수 있으니 옆으로 밀쳐놓고 확실히 아는 것만 쓰기로 한다. 누가 청문회에서 이렇게 주장했으니 그대로 틀리지 않게 받아쓰면 되고, 보도자료에 적시됐으니 틀리지 않게 옮겨 쓰면 된다. 촛불 집회 현장에 나가서는 집회가 열린 시간과 장소, 모인 사람들이 치켜 든 피켓에 적힌 구호, 연단에서 주장한 내용의 요약까지만 기록해 간단히 전달한다. ‘정확성’을 지켜야 할 가치로 내세웠으니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핑계로 골치 아픈 항목들은 기사에서 빼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우리는 객관성을 성취하기 어렵다고 보고 어느새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한 단계 내려섰다. 이쪽 이야기도 전했으니 저쪽 이야기도 전하면 되는 것이다. 여당의 주장도 적었고 야당의 주장도 적었다. 누가 거짓말인지를 가려내려면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크니 그만 접기로 한다. 촛불 집회 보도에서 집회 참가자의 규모를 적어야 하는데 다툼의 소지가 있으니 경찰 추산 얼마, 주최 측 추산 얼마로 양쪽을 공히 다루어 준다. 어느 쪽이 터무니없이 많게 혹은 적게 잡았는지는 시청자·독자가 판단할 몫일까? 아니다. 현장을 동서남북 누비고 멀리서 집회시위 현장 전체를 조망해 본 사람은 기자일 텐데 광장 한 가운데 앉아 있던 시민이 혹은 집에서 뉴스를 기다리던 시민이 어찌 판단하겠는가. 4만5000명과 9000명, 2만5000명과 7500명 사이에서 독자와 시청자는 허탈하기만 하다. 경찰과 주최 측 주장을 공정하게 다뤘는지는 몰라도 기자와 시민 사이의 공정성은 무너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공정(公正)의 정(正)도 은근히 부담스럽다. 이럴 때는 공평(公平)이라고 비슷하지만 다른 가치로 반 칸 정도 기준을 내려 잡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다시 후퇴한다. 공정성·공평성마저도 이루기가 만만치 않으니 요즘은 ‘균형’이라고 부른다.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걸 목표로 기준을 낮추는 것이다. 그리하면 공정, 공평이라는 공(公)에 담긴 사회적 책무의 부담도 한결 줄어들고 자책감도 덜어 좋다. 어느덧 객관성이라는 말은 덜 쓰고 공정성이란 말도 덜 쓰고 균형성이라는 말을 점점 많이 쓰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리는 최근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조사를 보도하면서 자신의 얼굴은 물론 자신의 신변과 미래까지 위험에 노출한 양심선언 경찰 간부와 자신의 얼굴마저 가리고 연습대본을 지참하고 등장한 정보기관원을 마주했다. 그들을 두고도 우리는 공정했고 공평했고 균형을 잡았다.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객관성이라는 가치추구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객관성 너머에 묻혀있던 ‘진실(眞實)’에의 갈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객관성에서 정확성, 공정성, 공평성, 균형성으로 성취의 기준을 낮춰 가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 진실을 마주하고 진실을 전할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 ‘기자 비슷한 사람’에서 ‘기자일 수 없는 사람’으로 추락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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