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권 독립 제도화 시급하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언론은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세상이 썩지 않도록 지켜준다. 언론이 사회의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해 낼 때 그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언론이 당당히 할 말을 하고 잘못된 점을 비판하려면 먼저 스스로 정부나 자본 등 어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사주나 경영진의 입김으로부터도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걸 방해하는 외부의 유혹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사장이 바뀌는 공영방송사는 주요 경영진은 물론 보도국 간부들까지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사실상 보도의 균형을 상실한 상태다. 경영 압박에 직면한 신문사들은 광고를 앞세운 자본과 사주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기가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주도한 간부들과 이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기자들은 요직을 차지하고 반대로 이에 저항하는 기자들은 해직되거나 좌천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국민들은 ‘과연 이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언론이 대중의 신뢰를 잃을수록 뒤에서 웃음짓는 건 언론의 견제 대상인 기득권 세력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인사권과 자본을 무기로 언론인을 줄 세우는가 하면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조종하려 든다. 내 편인 언론사에는 무더기 특혜를 몰아준다. 종합편성채널의 출범이 대표적이다.

광고시장이 만만치 않은데다 언론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존위기에 내몰린 사주나 경영진이 알아서 보도 수위를 조절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고스란히 편집권이나 제작자율성 침해로 이어진다. 1987년 6·10민주항쟁의 산물인 편집권 독립 제도화를 수십년이 지난 지금 다시 외치는 이유다. 양심적 사주의 의식에 맡겨두기엔 대한민국 언론을 둘러싼 현실이 너무도 척박하다.

그나마 사장 직선제와 함께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시행 중인 경향, 한겨레 정도가 편집국 구성원들의 총의를 존중하는 인프라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언론사들은 편집국장 임명동의 제도가 있다 해도 오너 체제하에서 구성원들이 개입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정권이든, 거대자본이든, 아니면 종교권력이든 언론사 소유권을 쥔 사주일가가 존재하는 한 ‘잠재적 편집국장 후보군’들은 기사의 공공성이나 기자들의 총의보다 편집국장 지명권한을 가진 사주의 눈치를 더 헤아릴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신문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편집국장 직선제 부활을 추진 중인 것은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편집국 봉쇄라는 초유의 현상을 빚은 최근 한국일보 사태는 편집권 독립의 제도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기자들은 사주인 장재구 회장의 비리에 맞서 장 회장이 임명한 하종오 편집국장을 임명동의 투표 부결로 거부했지만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한국일보 노조 비상대책위원회가 장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이영성 편집국장과 부장단을 경질하기도 했다. 2011년엔 부산일보 이정호 편집국장이 정수장학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가 해고됐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견제 받지 않는 집단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언론계 내부도 마찬가지다. 편집권 독립과 제작자율성이 보장될 때 진정한 언론 자유는 만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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