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공포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공포(恐怖)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지나친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공포는 그래서 정치적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 광풍(狂風)처럼 몰아치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몇가지 층이 다른 ‘공포’를 읽는다.

녹취록 전문의 내용을 보면 뭔가 무시무시하고 거창하긴 하다. 하지만 석연찮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황당함이 먼저인 듯하다. “시대착오적이다”, “그게 가능한 일이겠느냐” 게 주류적 태도다. 일단 130명이 모여 내란을 음모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녹취록 전문이 동영상과 일치하고 내용도 사실이라는 전제를 깔더라도 현실가능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 그들 세력이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해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세력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진보진영의 ‘위장취업자’들에 불과한 것 같다. 그래서 느끼는 감정은 공포라기보다는 황당함이다. 국정원이 ‘공포’를 조장하고자 했다면 현재까지는 실패다.

국가정보원은 어떨까. 국회의원이 연루된 내란음모사건을 적발했다며 기세등등하다. 헌법질서를 유린하고자 하는 불순세력을 검거해 국가안전을 지켰으니 이제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지 말라고 연신 자화자찬이다. 국가를 보이지 않은 위험세력의 공포로부터 지켜냈다는 자부심에 들떠있다. 바로 직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댓글조작 등 선거개입을 한 행위로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조직의 존망을 고민하던 모습과 다르다.

하지만 지금 수사 과정만으로는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조직 생존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는지는 미지수다. 대선개입으로 인해 촉발된 개혁요구를 무력화시키고 국정원의 생존을 위하여 사실보다 과장되게 이석기 의원 사건을 발표한 점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공안사건처럼. 더욱이 얼마 전 국정원이 발표했던 ‘탈북자화교남매 간첩’ 사건이 1심에서 무죄를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판은 벌어졌지만 흥행이 예상과 같지 않아서인가. 아예 난장판을 꾸민다. 언론은 국정원의 장단에 발을 맞춘다.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아이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더 흉폭한 괴물을 등장시키려는 이야기꾼 심리다.

국정원과 언론은 내란음모에 덧붙여 여적죄 적용여부를 검토한다고 흘렸다. 여적죄는 전시상태에서 ‘적국과 협력한 자’에 대하여 사형만으로 처벌하는 죄목이다. 정말 생소한 죄명이다. 언론은 나아가 그들이 북한과 연계되어 밀입북한 흔적이 있고, 수시로 연락을 취한 흔적도 있다고 보도한다. 그것도 공중전화로. RO라는 모임의 참가자를 줄줄이 소환하겠다고도 한다. 개인의 가정사 등 사생활을 파헤치고, 확인도 안된 일들을 사실처럼 보도한다. 더 짓밟고 더 악마처럼 만들어 공포를 확산하는 게 목표인 셈인가. 국정원 또는 수사기관 관계자의 입을 빌어 짜깁하고 부풀리는데 여념이 없다.

모든 기사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 이석기 의원 사건의 실체는 확정된 바 없다. 수사과정일 뿐이다. ‘국정원에 의하면’, ‘수사기관의 관계자에 의하면’이라는 문구는 사실을 담보하는 전제조건이 아니다. 전제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눈을 돌려 이석기 세력을 보자. 역시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보면 이석기 세력 역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녹취록 해명을 보면 공포심의 저변에 깔려있는 실체가 일부 보인다. 총기탈취 운운은 농담이라면서도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과 보도연맹사건으로 당시 진보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전쟁이 나자마자 집단살해 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론했다.

그들의 생각 밑바닥에는 어쨌든 그럴 것이라는 ‘공포’가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지구종말에 대비해 화성에 가겠다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지 않은가.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그들의 피해의식, 공포는 분단국가라는 현실과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실정법과 무관치 않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대상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두려움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진정한 공포인지, 가짜 공포인지, 공포의 대상 자체가 아닌지를.

이석기 의원 사건도 마찬가지다. 내란음모사건의 실체는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들의 사상과 행동이 현실적 위협을 가져오는 공포일지, 철 지난 망상인지는 기다려 봐야 한다. 그래도 사상의 자유 차원에서 다른 꿈을 꾸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오히려 지금 이 사회의 진짜 공포는 마녀사냥식으로 여론재판을 하며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국정원과 언론의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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