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는 던져주는 먹이를 쳐다보지 않는다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기록의 유무, 불법 삭제행위 여부를 놓고 언론마다 시각을 달리하며 논란은 여전하다. 그 중 경향신문 기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전한다.

“여권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 당시부터 수세에 몰릴 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이번에는 기초연금 공약 후퇴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의 청와대 배후 압력설로 야권의 공세에 시달리자 검찰 중간수사결과를 내세워 반격하고 있다.”

언론들이 문제 삼지 않았지만 비슷한 추론이 가능한 사건은 또 있었다.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문제이다. 2010년 주한미대사관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한국 내에서 찬반 갈등을 빚자 2주간에 걸친 여론조사 후 본국에 보고전문을 띄웠다. 그 내용은 위키리크스를 통해 전해졌다.

“혹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6월 지방선거를 위해 세종시 이전 문제로 실망한 친박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당 분란을 수습하기 위해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를 요청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다시 강력하게 제기된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의 배경은 무얼까.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 기초연금 공약 후퇴, 검찰총장에 대한 청와대 배후 압력설로 궁지에 몰린 것이 배경이라 의심해 볼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언론들은 현 정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리라는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는 듯하다. 환수 연기는 북핵과 북미사일에 의한 안보환경 변화 때문이라는 국방부 발표 그대로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도 핵심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 정말 있었느냐’하는 것이지만 지금의 언론보도는 ‘사초가 어디로 갔느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도 민주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핵심은 검찰간부에 대한 사찰 여부와 정부·언론의 유착이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는 혼외자 여부와 유전자 감식에 매달리고 있다.

문제는 정보의 일방적 하향전달과 언론의 종속이다. 언론이 권력을 추적하며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정보를 흘리는 대로 뒤쫓기에 급급하다. 이것은 공격권을 언제나 권력이 쥐고 있고 저널리즘은 수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공격과 수비에서 공격자는 비용과 인력의 소모가 많아 불리하다. 반면에 공격자는 3가지 차원에서 유리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3가지를 공격자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정치권력과 저널리즘의 쟁투에서 권력이 공격권을 쥐면 비용과 인력소모의 불리(不利)는 문제되지 않는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 사찰과 감찰, 필요인력의 동원과 비용지원…. 공권력을 동원하면 공격자가 갖는 불리는 쉽게 커버되고 반면 공격자가 갖는 이점은 극대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궁지에 몰렸을 때,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 등 이슈를 터뜨리는 시기와, 정부의 어느 기관을 이용할 것인가의 장소, 어떤 채널에 어떤 방법으로 정보를 흘릴 건지 방식을 저울질하며 언론을 공략한다. 여기에 맞서려면 언론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약점을 찾고 공격루트를 열어야 한다. 획일적인 취재와 받아쓰기에서 벗어나 권력의 힘과 감시를 분산시키되 약점이 발견되고 방어벽이 허물어진 곳은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 초기에 백악관은 기자들이 백악관 관료들에게 사적인 루트를 통해 접근하고 공보국 사무실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담당자를 바꾸고 기자실과 공보국 사이의 문을 폐쇄하기까지 했다. 기자들은 분노했고 백악관 담당 기자들의 기사 속에서 클린턴은 부시보다 더 못난 대통령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그때 백악관의 언론 담당 참모들은 복도 끝 프레스룸에 모여 있는 기자들을 별칭으로 불렀다. ‘짐승들’이라고. 괘씸하고 모욕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백악관이 기자들을 상대하기가 그만큼 힘들었고 위험스레 여겼다면 한편 긍정적으로 봐줄 수도 있다.

기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벽 너머의 권력자를 쏘아본다. 물어뜯을 기회를 엿보며 권력의 주변 이곳저곳을 맹수처럼 쏘다닌다. 던져 주는 먹이를 외면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野性)으로 살아 있는 먹잇감을 찾아 샅샅이 파헤치며 누빈다. 우리는 기자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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