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거듭되는 이상한 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소식이 귀를 의심케 한다. 타 방송사의 보도를 과잉 인용보도해 기자들의 보도국장 불신임까지 거론된 게 얼마되지 않았다. 가을개편에서 신설된 ‘역사저널 그날’의 출연 패널을 문제 삼아 첫 방송이 다른 제작물로 교체됐다. 이어 ‘TV쇼 진품명품’ 진행자를 제작진과 협의 없이 교체하고 이에 반발한 담당 PD와 팀장까지 5명을 강제 인사 발령 조치했다.

이제는 ‘블랙리스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KBS 라디오 2FM ‘황정민의 FM대행진’ 뉴스브리핑 코너에 섭외된 KBS 기자를 라디오 국장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제작진은 본인은 물론 보도국과도 출연 조율을 마친 상태였다.

각각의 경우를 보면 의혹이 더욱 증폭된다. ‘역사저널 그날’은 녹화까지 마친 상태에서 출연 교수를 문제삼아 첫 방송 분이 다른 제작 분으로 교체됐다. 담당 고위간부가 패널로 참석한 주진오 상명대 교수가 천재교육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자라 곤란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역사교과서 논란이 한창인데 교학사를 제외한 나머지 교과서 측의 대표적 집필교수가 공영방송에 나오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저널 그날’의 당일 방송분은 교과서가 주제가 아니라 고종 시대를 다루는 것이었다. 또 주 교수가 무명의 교수도 아닌데 녹화를 할 때까지도 몰랐다가 갑자기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 때문에 윗선에서 모종의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진품명품’ 사회자 교체도 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제없이 잘하고 있던 진행자를 갑자기 일방적으로 교체 통보하면서, 설득력 있는 이유도 대지 못했다. 제작진도 무조건 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심도깊은 논의를 해보자는 상식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사측은 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제작진마저 전원 교체하다시피했다. 새로 투입하겠다는 아나운서가 상전벽해를 일으킬 만한 획기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지도도 높지 않고 부적격이라는 문제제기까지 받고 있다. 이런 파장을 무릅쓰고 진행자를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갖가지 상상력이 발휘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새로 들어오는 아나운서의 ‘배경’이 무엇이냐는 언론계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타사 기자도 아니고 자기 소속사 기자 출연을 반대하는 일 또한 전무후무한 일이다. 더욱이 간부들은 다른 기자를 섭외하라며 나서서 스케줄 조정까지 해줬다고 한다. 출연 불허 결정 이유를 뚜렷하게 설명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간부들의 반대에 부딪힌 그 기자는 이미 앵커 생활도 거쳤고 방송기자로서 검증을 받은 인물이다. 후배들의 신망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부들에게 불편한 이유를 굳이 찾자면 KBS 새노조의 집행부를 지냈다는 것뿐이다. 결국 노조 간부에 대한 블랙리스트라는 해석을 피할 길이 없다.

이 모든 사태의 공통점은 아무런 소통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생산적 토론이나 조정도 없이 명령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조직문화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군대에 더 어울린다. 일선의 제작자율성을 무시하면 일부 간부들과 수뇌부는 당장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사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사이 KBS는 병들어갈 것이다. 제작진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질식된다면 KBS의 미래는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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