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시대현실은 노는 물이 다르다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지난달 31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의 주제는 ‘스마트 시대 방송저널리즘의 위기와 전망’이었다. 기자협회보에 실린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방송 현실에 대한 진단은 비판 일색이다.
“방송이 사실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뉴스는 거의 없다”.
“경쟁상황에 놓인 방송저널리즘이 선정성과 폭력성을 높여가며 저널리즘의 전통적 가치와 윤리를 저하시키고 있다”.

모두 방송 저널리즘의 현실을 제대로 짚어낸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세미나의 내용을 전해 듣는 저널리즘 현장의 사람들은 흔히 이런 생각을 한다.
“모두 다 옳은 이야기지. 하지만 현실은 그런 원론과 원칙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이 넋두리도 틀리지 않는다. 보도본부도 편집국도 뉴스룸도 교과서 속의 세계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이다.
원칙과 대의명분, 엄격한 윤리의식이 비집고 들어가 자리 잡기가 만만치 않다.
보도본부와 뉴스룸은 현실이고, 세미나에서의 분석과 지적은 이미지일 뿐이다. 관념적인 학술용어의 나열일 뿐이다. 우리 저널리스트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변호한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에서 우리의 뉴스는 그저 이미지일 뿐이고 상투적인 보도용 언어의 나열일 뿐이다.
우리의 뉴스에는 죽어라 일해도 아무 희망 없는 이 시대 민중의 삶이 리얼하게 담겨 있지 않다. 경제부처나 통계청의 숫자로만 나열된다.

국가 헌정질서를 유린한 권력기관의 부정에 대한 경악과 전율, 절박한 대책요구도 들어 있지 않다. 여야의 치고받는 말싸움만 마치 만화처럼 그려진다.

민주정치에 대한 비전과 허접한 정치현장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없다. 홍보수석과 여야 대변인의 백브리핑만 옮겨지고 있다.

치열한 현실인 뉴스룸에 방송학자들의 교과서 같은 비판이 끼어들 틈이 없듯이 우리 뉴스에는 치열한 이 땅의 현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과연 우리와 방송학자들 중 누가 세상 물정 모르고 담론만 늘어놓는 답답한 인간들일까?

후배 기자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지며 어디 어디를 가 보았고, 누구누구를 만났는지 꼽아보라고 한다.
“너랑 네가 쓴 기사랑은 노는 물이 다른 거 아니냐?”

기자는 편집국과 출입처 대변인실과 몇 몇 정보통의 방에서만 살아간다.
시장, 복덕방, 노동현장, 논밭. 사람 사는 현장으로 나와 보지 않는다.
정치를 꾸짖는 국민, 정당정치를 걱정하는 평당원, 보수·진보 정치학자를 고루 만나지도 않고, 소수정당과 원외정당은 들러보지도 않는다.

학교의 학생, 학원의 재수생, 고뇌하는 교사, 학부모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저런 현안 때문에 공청회, 세미나, 토론회, 설명회, 촉구대회, 농성 등이 열리지만 일일이 가보는 것은 삼가 한다는 이유로 귀찮아한다.

우리 시대와 우리 시대의 기자는 노는 물, 사는 세계가 다르다. 기자는 아주 멀리서 힐끔 쳐다보든가 브리핑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한다.
기자를 부를 힘이 없고 화끈하지도 않다면 기자는 그 현실들로부터 더욱 멀리 있다. 그래서 우리의 뉴스에는 마땅히 담겨야 할 현실이 담기지 않고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문제는 또 있다. 우리 방송의 왜곡된 시스템과 권력구조는 현실에 등 돌리고 노는 사람들에게 후하다. 그 방식에 잘 적응하며 승진한 사람들은 이 부서 저 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자기의 놀아 온 방식을 다시금 전파한다. 그 방식대로 하다 보니 방송 뉴스가 용비어천가가 되며 파행을 가져 오는 것이다.

이 땅의 저널리스트들은 더 늦기 전에 물어 볼 일이다.
내가 전하는 뉴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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