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라고?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김준현 변호사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1.27 16: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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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현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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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역사드라마를 보면 상투적인 표현이 나온다. 절대권력자인 전제 군주들이 자주 쓰는 일상어다. 듣기 싫은 의견이 나올라치면 군주는 바로 “그 입을 닥치지 못할까”라고 일갈한다. 점잖게 표현할 때는 “경들은 그 입을 다물라”하는 정도다. 백성들의 민원과 신하들의 조언 속에서 최고통치자로서 갈등을 표현하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절대권력자의 횡포를 나타내는 모습이기도 하다. 가끔 소신있는 신하가 “전하, 옛 말에 중구(衆口)는 난방(難防)이라고 하였사옵니다”라고 하면 대뜸 “경들은 물러가시오”라고 답한다. 생각하니 드라마와 작금의 현실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지금 이 사회에는 “그 입을 다물라”는 절대 군주의 명령이 횡행한다. 입을 열면 종북주의자로 매도당한다. 신부님이건 정치인이건 일반 시민이건 대상도 가리지 않는다. 신부님들이 시국미사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는다. 거기에서 나온 일부 발언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청와대는 “묵과하지 않겠다”고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언론 역시 본질은 다루지 않고 종교계의 종북주의라고 부각시킨다. 정말 중구난방이라는 말을 모르나 보다. 하긴 4대강에 보를 쌓고 둑을 세워 물길을 막았던 것을 보면, 국민들의 말조차 막을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절대 오만이다. 절대 오만의 극치는 우리 사회를 전면적인 사상전쟁터로 몰고 있다. 정부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심판 청구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당 한 의원은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말로 위헌정당심판 청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말은 독선과 아집의 결정체다. 타인 존재의 부정이다. ‘자유의 적’인지 아닌지를 누가 구별할 수 있겠는가. 자유의 적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자신들이 보기에는 자유의 적인 것 같으니 헌법재판소에서 한번 판단해 보라고 무책임하게 던지는 식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랬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권리라며 탄핵심판청구 했다가 큰 코 다친 쪽이 현 여당 아니었던가.
게다가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고, 단 한 사람만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그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자유의 본질이다. 설사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자라도 그들의 자유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밀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자유의 적이 악용하려고 혈안인 자유를 그들에게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켜내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맞서 싸우는 사람들보다 더 나을 바가 없게 된다.” 물론 밀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 전체의 이익과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사회 전체의 이익은 전체주의로 왜곡 변형되고, ‘입을 다물라’는 명령만 득세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포장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이익은 전체주의와 다르다. 전체주의는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정치권력이 정치는 물론 국민 개개인의 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다.
세계 역사는 전체주의의 폐해를 증명했다.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국민들의 동의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이후 다수의 이름으로 정권의 뜻에 따르지 않는 세력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원한다 할지라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침해한다면 그것은 독재이고 전체주의다. 이른바 ‘다수의 횡포’다. 지금 일련의 사태는 감정을 앞세워 이성을 마비시키고 대화와 소통을 부정하는 독단적인 현 정부의 행태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전 군사독재정권 시절 정권유지를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됐던 ‘레드 콤플렉스’가 다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다수에 의하여 ‘자유의 적’이라고 낙인찍힌 집단과 개인,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자유론이고 전체주의로 가는 길을 막는 최후의 방어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