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이여, 대자보를 바로 읽어라
[언론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2.25 13: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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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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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마지막을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점령했다. 물론 그 생명이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광우병이나 반값 등록금으로 빚어진 촛불과 비교하자면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개별적 행동의 집합이다. 또 거리나 광장으로 나와 직접 부딪히며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공간에서 벽보를 쓴 뒤 내붙인 자기고백이다. 아직은 지각과 인식, 실천에서 완결된 흐름을 이루지 못해 지속될 동력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우리에게 생각할 것들을 던지고 있다. 비록 개인의 생각을 적어 내려간 개별적 행동들의 집합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집단적 각성이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분명한 사회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게시판이나 벽에 써 붙인 대자보는 한계가 있다. 공간적으로 그 주변을 넘어서지 못하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 있지 못한다. 그런데 ‘2013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SNS를 플랫폼으로 해 ‘직찍’ 사진이나 요약된 내용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생시켰다. 이후 얼마든지 다시 전개될 소통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 3월 당시 고려대생 김예슬 씨의 대자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는 해당 대자보를 언론이 여론화시키며 주체적 역할을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기성 언론은 ‘안녕하십니까 대자보’에서 지극히 피동적이다. 이번 이슈의 초기과정을 보면 고려대의 첫 대자보에 이어 다른 학생의 대자보가 나붙을 때 마다, 그리고 다른 대학으로, 중·고교로 옮겨 갈 때마다 먼저 전한 것은 SNS였고 기성 언론은 뒤쫓아 다니며 상황을 전했을 뿐이다. 대자보의 내용을 매스미디어가 전파시키는 것이 과거의 행태였다면 이번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매스미디어의 도움 없이 대중 전파와 사회적 반향이 충분히 전개된 것이다.
또 주목할 것은 중·고교생들도 동참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교생은 철저히 격리되어 있는 집단이다. 민주주의, 경제 양극화, 신자유주의에 따른 불합리한 민영화 등의 사회적 이슈로 대자보를 써 붙이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 그런 대자보를 써 붙인다는 것은 대자보에 담긴 내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접하며 생각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건 학교 교과 과정에 없는 내용이다. 텔레비전 여러 채널에서도 그런 시각으로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을 내용들이다. 여기서도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 기존 일간지 등 전통적 저널리즘의 좁아진 입지가 드러난다. 기성언론의 존재와 무관하게 청소년 세대도 사회를 들여다보고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중·고교생과 대학생들의 대자보 참여는 입시와 스펙 쌓기의 틀에 갇혀 있던 이 땅의 청소년들이 새로운 탈바꿈의 변곡점에 섰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광우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목소리를 내던 2008년 촛불에서의 청소년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성장과 변화에 우리 언론은 역시 아무 것도 기여한 바가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왔다. 교육부가 지난 18일 ‘학년말 학교 면학분위기 유지를 위한 생활지도 협조’라는 공문을 전국 시·도교육청에 보냈다 한다. 이 지시에 따라 서울교육청이 내려 보낸 공문에는 “최근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내용을 학교 내에서 벽보 등을 통해 주장함으로써 학년말 학교 면학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으니 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고 되어 있다.
대자보를 붙인 주체는 학생들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방침에 침묵당해야 하는 당사자도 학생들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어디에도 중·고교생이 이 조치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인터뷰나 코멘트를 전하는 기사는 없다. 그들을 학교 교과과정에서 벗어나선 안 될 통제대상으로 보기 때문일까? 그들이 다시 대자보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와 통제에 대해 의견을 써 붙이면 그때서야 베껴 쓰려는 것일까?
언론이 대자보에서 읽어야 할 것은 대자보 내용만이 아니다. 시대와 세대의 변화도 함께 읽어야 한다. 시민사회의 성숙은 이제 20살 이전의 세대에게까지 전파되고 있는데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20살을 넘지 않는 그들의 눈에 우리 언론은 어떤 존재로 비쳐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들이 사회로 진입하는 2020년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 어떤 가치로 이 사회에 남아 있을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