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의 덫에 걸린 '국정원 댓글사건'
[언론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2.12 15:07:05
|
|
|
|
|
▲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
|
|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것이냐”는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먼저 확인해 둘 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26일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한 발언을 100% 믿는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벌써 1년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2014년 갑오년 새해에 소모적인 정쟁을 뒤로 하고 ‘대박 통일’과 ‘민생 안정’을 위해 민관이 합심해 뜀박질을 해야 하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국정원 댓글수사 은폐 조작 사건’을 두고 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자 강한 역풍이 불고 있는 탓이다. 지난 대선에서 누가 국가기관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라고 지시했는지를 성역을 두지 않고 낱낱이 밝혀 엄단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민이 다수이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이지만, 부정선거 우려가 있다면 투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진돗개 정신’ ‘호랑이 정신’이 필요하다.
김용판 무죄 선고 이후 JTBC의 7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특검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51.1%, ‘특검할 필요가 없다’ 0.4%로 특검 요구가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팩트TV도 7~8일 양일간 여론조사한 결과도 특검 찬성이 53.8%로 반대한 30.9%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투표한 27.5%가, 새누리당 지지자 24.1%가 ‘김용판이 유죄’라고 응답했다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사법부의 결과를 기다리자’고 했을 때 ‘김용판 무죄’와 같은 선고가 나오리라고 상상한 국민은 절반도 못 된다는 의미다. 상식적인 사람이면 다 안다. 2012년 대선 투표일을 이틀 앞둔 12월16일 밤 관행을 깨고 서둘러 서울경찰청에서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이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이유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고, 알게 모르게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난해 검찰에서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핵폭탄과 같은 수사결과를 발표해도 여론은 왜 무덤덤했을까? 한국인은 1960년 3월15일 자유당 정권에 의해 자행된 대대적인 선거부정행위에 격렬하게 항의해 부도덕한 이승만 정권을 하야시킨 저력의 국민이 아니냐 말이다. 당시보다 대졸 출신의 지식인도 많고, 1987년 직선제 이후 민도도 높아졌으며, 이지문 중위의 군내부의 부정선거 폭로 이후로 군대에서도 비밀투표가 원칙이 실현되는 민주 공화국에서 국민이 왜 불의의 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을까? 불의에 눈감을 만큼 민생이 어려운 탓일까? 남재준 국정원장의 ‘개인적 일탈’이란 해명에 수긍했기 때문일까? 군 사이버사령부에 대한 국방부의 자체수사로 전모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본질이 사라진 탓이다. 이른바 이데올로기적 상징조작인 프레임(frame)의 덫에 걸려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 주요 언론에서 흔히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명명한 이 사건의 실체는 검찰의 수사결과로 보면 이것이다. ‘18대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 직원들과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동원돼 인터넷 댓글이나 트윗, 리트윗 등으로 야당 후보를 종북이나 빨갱이로 음해하는 등으로 여당후보인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대국민 선전전을 벌였다는 의혹’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름은 ‘국가기관이 동원된 대선 부정선거 의혹 사건’이거나 축약해도 ‘대선 부정선거 의혹’이어야 한다.
야당조차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부르는 탓에 사건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 야당은 ‘대선결과 불복’의 프레임을 걱정하거나, 또는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파장에 대한 우려 탓에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유일하게 민주당 비례대표 장하나 의원이 ‘부정선거’ 운운했으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의원제명’을 거론하며 격렬하게 항의하자, 유야무야됐다. 한심한 민주당이다.
시인 김춘수의 ‘꽃’을 거론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줘야만 비로소 ‘꽃’이 된다. ‘일물일단어(一物一單語)’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민주주의 법질서를 혼탁하게 한 18대 대선의 부정선거 의혹을 바로 잡고 싶다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줘야 한다. 이렇게 ‘대선 부정선거 의혹’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