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내란음모 유죄판결, 한편의 코미디다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 김준현 변호사  
 
변호사로서 일하다 보면 직접 담당하지 않은 사건의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질문이 많을수록 일반의 상식과는 맞지 않은 판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판결이 있던 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 스스로 질문을 하고 싶은 판결이 나왔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의혹 사건이다. ‘참담하다, 사법정의가 죽었다’고 누군가는 분노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준다. 개그표현을 빌리자면 “21세기 백주 대낮에 무장폭동으로 국가기관을 전복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는 세력이 있다고 재판이 열려서 당황하셨죠. 그런데 검찰의 기소 내용과 똑같이 유죄판결이 난 것을 보고 더욱 당황했습니다”라는 식이다.

녹취록 등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증거가 모두 인정된다고 치자. 그래도 내란음모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접한 정보라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란은 국가기관을 전복하는 폭동을 말한다. 내란을 계획하려면 그만한 물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리력과 성공 가능성, 즉 현존하는 위험은 내란죄의 성립을 가르는 요건이다.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게 현 체제에 비판적인 조직이나 단체의 존립 자체를 막고자 하는 것이 내란죄의 입법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선술집만 가도 하룻밤 사이에 정권과 대통령을 수차례 바꾸는 음모와 모의는 지천으로 널렸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선전 선동 음모’를 단순히 가능성만을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을 부정하는 독단적인 발상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경계대상 1호라고 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원칙을 발전시켜왔다. 어떤 표현이 처벌대상이 되려면 그 표현에 의한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내란음모 사건 판결의 논리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데니스 판결과 유사해 보인다. 데니스와 공산당 간부들은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기로 모의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미 연방대법원은 ‘명백하고 가능성 있는 위험(clear and probable danger)’을 근거로 삼았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폭동이 일어날 위험의 가능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데니스 판결은 1951년에 내려졌다. 2차세계대전 직후이자 한국전쟁이 진행중이던 냉전시대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1969년 브란데버그 사건에서 위험의 가능성만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판결한다. 이전에 확립된 ‘명백 현존의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원칙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나아가 그 위험이 급박해야 한다는 것까지 강조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내란음모 사건은 아무리 봐도 위험성이 현존하지 않고 급박하지도 않다. 이석기 의원의 세력 또는 조직원 130명이 모여 폭동을 모의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난센스다. 또 이를 내란음모죄로 기소하고, 유죄로 판결한 것은 난센스를 넘어선 코미디다. 결국 이 사건은 냉전시대의 데니스 판결처럼 ‘위험의 가능성’만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 판결이라 평가할 만하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냉전시대도 아닌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란죄로 규정하는 ‘무장폭동의 위험’이 과연 현존하는 것일까. 아니 현존할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일까.

판결문의 논리를 추적하면 재판부가 판단하는 위험의 실체는 ‘북한의 존재’인 듯하다. ‘주체사상, 대남혁명론, 사회주의’ 등의 문구에서 추정된다. 이런 논리라면 실현 가능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북한이나 사회주의와 관련된 어떠한 정치적 표현도 억압당하게 된다. 북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명백 현존 위험의 원칙’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공정한 재판을 내친 것이다. 이 판결에서 유죄를 받은 것은 내란음모가 아니라 피고인들의 사상이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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