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프레임' 이면에 공포와 불안이 있다
[언론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교수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3.03 18: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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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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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프레임’. 지난 대선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2014년 현재까지,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맹위를 떨칠 가능성이 높은 프레임이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이든, 거기에 반발하는 쪽이든, 혹은 무관심한 척 지켜보기만 하는 쪽이든 현재로서 이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프레임 개념을 대중들에게까지 확산시킨 미국의 인지언어 심리학자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코끼리’를 생각한다고 한다. 프레임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에 찬반 의견을 표시하는 것과 별도로 해당 개념에 근거하여 사고를 하는 것임을 가장 단적으로 설명한 예다.
그래서 특정 프레임에서 이탈하고자 한다면 그 프레임을 반박해선 안 되며, 다른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종북 프레임이 과도하거나 조작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 대부분은 ‘종북’이란 말부터 시작한다. 이는 언론 역시 마찬가지며, 이 글조차도 제목이 ‘종북’으로 시작한다.
물론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 때 ‘햇볕정책’이라는 프레임은 금강산 관광이라고 하는 매우 파격적인 결과물까지 얻어냈었고, 그건 지금보다 훨씬 더 반공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이뤄낸 것이기도 했다. 비록 북한의 핵개발과 그로 인한 ‘퍼주기 프레임’에 의해 퇴색되어 지금은 옛말이 되었지만 종북 혹은 그와 유사한 프레임을 대체하여 성공을 이뤄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와 유사한 언어를 조합해내면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프레임이 언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어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프레임이란 말의 의미처럼 해당 언어가 속해 있는 가치와 감정의 ‘틀’이 프레임의 진짜 힘이다. 그런 면에서 ‘종북’이란 말은 ‘공포와 불안, 증오’라는 생각의 틀과, ‘햇볕정책’은 ‘평화와 안정, 공존’이라는 생각의 틀과 연결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종북 프레임이 맹위를 떨친다는 건 단지 북한 혹은 북한을 따르는 이들에 대한 반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이 매우 불안정하고 공포스럽다는 걸 방증한다.
이는 사회 안전망이 파괴되고 세상이 무한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정글처럼 되어버린 우리사회의 현실, 그러한 현실이 사람들에게 준 공포심과 무관하지 않다. 햇볕정책이 힘을 얻던 시기가 IMF 외환위기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극복하고 월드컵 4강에 올랐던 시기인 걸 떠올려 보면 이러한 해석이 결코 비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미 지난 대선 때 ‘공포와 불안’이 아닌 ‘안전과 공존’에 기반을 둔 ‘경제민주화’란 프레임이 화두가 됐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제 민주화는 대선 이후 휴지조각이 되었고 안정과 공존을 원했던 대다수 사람들의 요구는 묵살됐다.
이러한 좌절감은 사람들에게 이제 더욱더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되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세상이란 정글 속에 웅크리고 앉아 겁먹은 눈만 껌벅거리게 됐다. 이것이 앞으로도 한참 동안 종북 프레임이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다.
대북 안보는, 그 자체로 잘 하면 된다. 북한에 무턱대고 양보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북한을 추종하는 이들은 현행법에 따라 적절히 처벌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이걸 구실로 사람들을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 건, 결국 그것을 견뎌내기 힘든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다.
부디 정치권과 언론이 종북 프레임에 대해 정치권의 이해득실이나 대북 문제 정도로 협소하게 취급하지 말았으면 한다. 모두가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은 종북 프레임이 함의하는 것의 정 반대편에 있음을 직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