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연재를 시작하며 인사를 드린다. 신문기자와 방송기자로 일했고, 미국계 인터넷 미디어와 토종 소셜미디어를 경영한 경험 때문인지, 미디어와 인터넷의 미래에 관심이 많다. 아마 톰의 친구 벤처럼, 원고료 없이도 기쁜 마음으로 기자협회보에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원고료가 있으니 더 기쁘긴 하다. 기자협회라는 좋은 공간에서 테크놀로지가 바꾸는 미디어와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영국에는 여름철에 하루 일정으로 사두마차(四頭馬車)를 몰고 30km에서 50km나 되는 길을 다니는 부유한 신사들이 있다. 그런 특권을 얻기 위해서 꽤 많은 돈이 드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 신사들이 그런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다면 그 일은 노동이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곧 그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민음사, 36쪽)에서 이렇게 썼다. 최근 창간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원고료 논란’을 보며 ‘톰과 그의 친구 벤’이 떠올랐다. 책장에서 책을 찾아 펼쳤다. 미디어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1870년대 미국 미시시피강가 작은 마을의 한가한 토요일 아침으로 떠나보자.

톰은 흰 회반죽을 담은 양동이와 붓을 들고 담장 앞에 섰다. 높이가 3m나 되고 길이가 30m나 되는 판자 담장을 칠해야 했다. 폴리 이모가 벌로 시킨 일이었다. 고된 노동을 하던 톰은 친구 벤을 보자 이렇게 ‘설득’했다.

“글쎄, 하기야 일이라면 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 어쨌든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일이 톰 소여의 마음에 썩 든다는 거야.” “아이들한테 담장에 회칠할 기회가 어디 날마다 있는 줄 아니?”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아이는 아마 1000명에, 아니 2000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할걸.”

결국 벤은 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좀 해 보자. 있잖아, 이 사과 속을 너한테 줄게.” 처음에는 톰을 놀리려고 모여들었던 다른 아이들도 결국에는 담장을 칠하는 데 ‘참여’했다. 아침나절에는 아무 것도 없이 빈털터리였던 톰은 오후 서너 시쯤이 되자 그야말로 ‘엄청난 재산가’가 되었다. 사과, 공기알, 장난감 악기…. 게다가 톰은 편하게 옆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담장을 세 겹이나 칠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미디어계의 판도를 뒤흔든 허핑턴포스트가 최근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5년 시작된 소셜 기반의 인터넷 미디어다. 트래픽에서 워싱턴포스트 등 메이저 언론사들을 뛰어넘고, 2011년 AOL에 3억1500만 달러에 인수되는 ‘성공신화’를 썼다. 그래서 그들이 한겨레신문사와 함께 한국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내심 기대가 컸다. 분명 출범 준비가 충분치 못했던 듯하다. ‘새롭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원고료 미지급 정책 논란’으로 화제가 된 건 그래서 안타깝다. 전업작가들을 착취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SNS를 중심으로 오갔을 뿐이다.

과연 허핑턴은 앞으로 네이버로 대표되는 포털 중심의 뉴스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전통 미디어 모델과 새로운 소셜 비즈니스의 길 사이에서 지금도 번민하고 있는 국내의 신문과 방송사들에게 무언가 ‘실전용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까.

소셜네트워크와 스마트 기기는 인간에게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수동적인 대중’에서 ‘능동적인 개인’으로의 변화다. 많은 이들이 블로그를 쓰고 밤을 새며 테드 강연 동영상에 한글 자막을 입힌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를 쓴 클레이 서키는 사람들이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를 지적인 도전, 자부심,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동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톰 소여의 모험’으로 가보자. 마크 트웨인은 톰이 인간의 행동에 관한 중요한 법칙 하나를 발견했다고 썼다. 노동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놀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즉 조화를 만들거나 물레방아를 밟아 돌리는 일은 노동이지만, 볼링을 치거나 몽블랑 산을 등반하는 일은 놀이였다.

미디어 분야에서 우리는 톰이 될 수도 있고, 벤이나 다른 친구들이 될 수도 있다. 페인트 칠 일을 시켰던 폴리 이모가 될 수도 있고, 그런 법칙에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또 톰을 현명한 소년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고, 친구들을 착취한 영리하지만 이기적인 아이라 평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톰이 1870년대에 깨달았던 ‘법칙’이 2010년대인 지금 소셜 시대를 맞이해 ‘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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