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다 더 재미있는 'SNS 뉴스'

[언론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3월19일 인터넷 화제는 ‘이부진 사장이 택시 기사를 살렸다’ 였다. 사건은 이렇다. 지난 2월25일 택시 운전기사 홍모(82)씨가 서울 중구 신라호텔 출입구 회전문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4명의 호텔 직원과 투숙객이 다쳤다. 호텔의 피해액은 5억원. 그러나 택시기사가 가입한 책임보험은 5000만원으로 4억원 이상 변제해야 한다. 82세의 늙은 택시기사가 성북구 종암동의 반지하 빌라에서 사는 어려운 사정이라는 것을 이 사장이 알게 되자 “배상을 요구하지 말고 필요하면 치료비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모든 언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언론에 이 미담기사가 실렸고,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도 하고, 약자를 돌보는 따뜻한 마음의 경영자라는 아우라로 삼성그룹 3세 후계구도에 우호적인 이미지도 형성됐다. 최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드러난 산업재해에 노출된 삼성전자 생산직 직원들을 돌보지 않는 비정함 등이 이번 미담기사로 덮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82세 택시기사인 것 마냥 기뻐했다. 얼마 전까지 독자들은 월세와 공과금 70여만원을 남겨놓고 자살한 세모녀 동반자살 사건으로 ‘집단적 사회적 악몽’을 꾸고 있었던 터라, 재벌가의 미담기사에 화색이 돌았다. 아직 살만한 세상인가라고 느꼈을 것이다. 미담기사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폭발하고 있었고, 다수의 까칠한 진보 논객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삼성의 미담기사에 ‘감히’ 초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도 그 중 하나였다. 김 교수는 20일 ‘페이스북’에서 “신라호텔은 상장회사이고,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기금 등과 수많은 소액주주들인데, 이부진 사장이 개인돈으로 채권을 면제하는 지 여부, 만약 회사돈으로 면제한다면 배임은 아닌지 등등이 독자들은 궁금하다”며 호텔신라의 보도자료를 토씨도 안바꾸고 베껴 쓴 앵무새 언론을 질타했다. 보도의 양상이 “마치 ‘봉건영주의 농노에 대한 시혜’를 찬양하는 것” 같다고도 지적했다. 하루 종일 올라오던 ‘이부진 사장님 만만세’ 기사에 질린 차에 아주 “왜 산업부 유통기자들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기사를 속보로 안쓰는거냐?”라고 맞장구를 치고 싶었다.

결국 그 궁금증은 하루가 더 지난 21일 풀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의 최윤수 변호사가 회사 블로그에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선행을 한 것인가? 범죄를 저지른 것인가?’라는 섹시한 제목으로 올린 법률적 해석을 해놓은 글이 공유된 덕분이었다. 그 글도 짧게 정리하면 “일각에서 업무상 횡령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회사의 재산을 본인이나 제3자에게 이전해야 하는 것이므로 본건과 맞지 않다. ‘이부진 사장이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돈으로 배상해준 것은 회사에 피해를 입혔으므로 업무상 배임이다’라는 주장은 가난한 택시기사에게 배상금을 받아내기 난망하고 잘못하면 악덕기업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아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므로, 법인격으로서 대표이사가 채권을 면제해준 것은 훨씬 남는 장사, 즉 배임이 아니다”라고 해석을 내놓았다.

‘이부진 사장 미담’ 기사는 언론이 누구를 향해 누구의 시각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가에 대한 원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재벌 홍보실이 불러주는 대로 쓸 것인지, 독자가 궁금해 하는 대목을 긁어주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승화시킬 것인지 말이다. 모두가 자신의 미디어를 갖게 된 SNS의 시대에 언론이 더 분발하지 않으면, 사회감시는커녕 자신의 밥벌이도 놓게 될 것처럼 보이는 지난 한 주였다.

김무곤 교수는 누구의 시각에서 보도의 소재를 다룰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다. 자본과 재벌에 관련한 기사를 재벌의 시각에서 쓸 것인지, 아니면 그들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쓸 것인지에 관한 지적은 ‘서울시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도 들이 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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