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레 겁먹고 권력에 굴종하는 언론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김준현 변호사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4.02 15: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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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현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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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나라가 규제개혁 바람이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이후 행태를 보면 그렇다. 언론도 맞장구치고 나섰다. 지난 1년간 정권의 경제적 구호였던 ‘창조경제’는 이제 수명을 다한 듯 ‘규제개혁’에 자리를 내주고 슬그머니 물러난 모양새다. 아무리 “정치는 쇼이고, 선거는 정책이 아니라 구호이려니”하고 자조해 보려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 하긴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선거 이후 골방에 처박힌 지 오래이니 창조경제는 그나마 신세가 나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규제개혁은 그 개념조차 모호했던 창조경제만큼 황당하지는 않다. 시민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트럭을 개조해 음식을 파는 이동식음식점(푸드트럭) 허용 여부에 관한 생생한 사례는 호기심도 유발한다. 그래서 언론도 반색하고 나선 듯 하다.
허나 언론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규제개혁은 역대 정권때마다 외쳤던 구호 중 하나다. 새로운 게 아니다. 지난 1998년부터는 법에 의해 규제개혁위원회가 설치됐다. 위원장도 국무총리와 민간부분 대표 1인 등 2인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행정규제를 받는 대상인 민간분야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구조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규제개혁위원회는 매년 규제개혁종합정비계획을 세운다.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변화된 상황에 따른 규제를 만들기도 한다. 상시적으로 ‘손톱밑 가시’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해결방안을 관련부처와 논의하고 있다. 실제로 규제개혁위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36개 부처에서 852건의 규제개선과제가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규제도 정부 부처가 임의대로 신설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가 가져올 영향을 분석하고 이해관계인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결정한다. 낡은 규제는 없애고 새로운 규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만들도록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애초 모든 규제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규제는 시민의 생명, 인권, 보건 및 환경 등의 보호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국토보전, 사회안전, 환경보호, 공정경쟁, 불평등해소 등의 가치가 그 속에 담겨 있다. 물론 시대 변화에 뒤처진 낡은 규제는 말 그대로 손톱밑 가시처럼 거북스러운 게 사실이다. 개선이 필요한 게 맞다. 따라서 규제개혁은 규제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과 규제로 인한 자율성 침해의 측면을 고려해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섣부른 규제완화가 저축은행 파산사태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 것처럼 규제개혁은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급작스럽게 마련된 대통령 주재의 민관합동점검회의에서 신설과 개혁, 철폐나 완화가 논의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이번 민관점검회의를 왜 개최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회의에서는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자신들의 분야에서 경제활동의 애로점만 호소할 뿐이었다. 경제살리기를 위해 규제개혁에 나서겠다는 강한 어조의 대통령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이번 회의의 목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현 정권은 이젠 규제를 ‘암덩어리’, ‘원수’라며 경제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나아가 규제개혁만 제대로 이뤄지면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측면도 있다. 규제개혁 테마는 올 상반기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표심을 사로잡는 매개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현 정권 입장에서는 창조경제를 대체할 새로운 이미지 정치를 각본대로 연착륙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규제개혁이 마치 한국경제를 살릴 새로운 메시아인 것처럼 앞장서서 호들갑이다. 국정홍보방송인 KTV도 아닌 지상파 방송 3사까지 나서서 대통령 주재의 민관합동회의를 생중계하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기계적인 중립성마저 상실한 듯하다. 청와대의 홍보협조요청이 있었겠지만 이건 숫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순순히 받아들인 꼴 아닌가. 정권 출범 1년이 지난 시점의 대통령 지지율이 60%를 넘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언론이 지레 겁먹고 권력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