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고 있는 언론 사유화

[언론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존립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는 기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심지어 100% 오류의 의견조차 용인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진리가 이들의 도전에 응전하는 과정에서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활력을 얻는 이득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용자가 비진리만 접하지 않고 진리도 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장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현재 자유로운 시장은 존재할까?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서구 사회는 이미 신문시장 집중의 위험성을 논하기 시작했다. 물론 작금의 언론 상황은 당시 우려가 낭만적이라고 할 만큼 언론 산업의 집중화가 심각해진 상황이다. 21세기 한국은 여전히 언론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쟁점인 사회이지만, 자본의 언론 소유 역시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설사 소수자가 힘겹게 언론을 소유한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그 존재는 미미할 가능성이 많다. 거대 언론의 영향력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 집중화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는 언론의 사유화, 지면의 사유화다.

사유화된 언론의 보도들은 공적 가치를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언론사주의 사적 이해관계 또는 언론사와 유관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조선일보가 보여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여부와 관련한 일련의 보도가 한 사례다. 채 전 총장이 막강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검찰총장이라는 공인이었고, 설사 의혹이 제기됐던 혼외자녀 존재가 이후 사실이라고 밝혀지더라도 당시 그 보도는 전적으로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서 이루어진 주문생산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문제 제기도 없고, 적어도 당시에는 사적 관계로 인해 공적 처리가 영향을 받았다는 의혹조차 없는 상황에서 내용은 오로지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채 전 총장 흔들기를 시도했던 세력이 얻은 정치적 이득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이들과 조선일보의 관계는?

어디 이런 일이 한둘일까! 우리의 방송법 상 보도를 하는 방송은 허가 또는 승인의 대상이다. 방송이 생산하는 일반 프로그램과 달리 보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논리에 따른 규제다. 방송이 전파에 의해 제한받던 시절과 달리 사실상 무한(?) 채널이 가능한 요즘 이런 규제가 유효한지 의문이 제기될 만하다. 반면 책임 있는 보도를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업자에게만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현행법 아래에서는 보도를 하도록 허용받지 않은 방송사업자의 보도 행위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소위 요즘 제기되고 있는 유사보도 논란이다.

그런데 유사보도 논란이 제기된 시점이 묘하다. 2012년 대선 당시 보수 성향의 PP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소위 시사보도형식의 내용을 내보냈다. 유사보도 논란이 불 붙을만했다. 하지만 조용했다. 반면 CBS, RTV를 비롯해 비판적인 내용을 내보내는 방송사업자들에 대해서는 유사보도 논란이 일고 있다. 또 CJ헬로비전의 지역 채널이 전국적인 사안을 보도한다고 문제 삼는 중앙일보의 보도는 공적인 문제 제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선거 시기 보도시장을 둘러싼 시장 쟁탈전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선거 시기 유권자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언론의 보도는 다다익선이다. SO 지역 채널의 왜곡 편파보도를 문제 삼는 것은 모르지만 시장 영향력 쟁탈을 고려한 중앙일보의 보도는 공적 핑계를 내세운 지면의 사유화에 불과하다.

지난 2월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송법 개정 시도를 공격한 소위 조중동매의 보도 행태는 바로 지면, 보도 시간을 사유화해온 이들 언론의 행태에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한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사주 또는 대 광고주 그리고 언론사와 연결된 외부 정치 세력의 이해를 위해 뉴스 시간을 사유화하는 간부들의 행태에 진실에 가장 접근할 수 있는 일선 언론인의 저항을 두려워 한 것이다.

언론은 점점 더 소수의 손에 의해 사유화될 것이다. 어렵지만 이제 이에 미혹되지 않고, 이런 언론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현명한 수용자의 깨어 있는 능동적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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